기분 변화가 심한 상사가 회사를 먼저 그만두고 부서를 옮기며 생활은 나아지는 듯했다. 근무 환경이 적응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새 부서의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새로운 상사는 업무를 익힐 시간을 충분히 주고자 노력했다. 또한 모르는 부분에 대해 물어보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세하게 알려주기 위해 애를 썼다. 동료들도 시간이 날 때마다 먼저 말을 걸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던 동료들과의 회식은 회사 생활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회사에서의 삶이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랬기에 나는 만족스러움을 경험하며 근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전 상사와 근무했던 일 년 동안의 시간은 쉽게 씻겨지지 않았다.
전 부서에서 상사와 근무하며 경험했던 부적절감은 회사라는 공간을 끔찍한 곳으로 바꿔놓았다. 상사의 지적이 이어질수록 나의 생각이나 감정, 느낌에 정당성을 갖기 어려웠다. 하나의 작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 행동이 '상황에 적절한 것일까?' 하는 생각의 과정을 끈질기게 거쳐야 했다. 그가 없어도 그로부터 받은 영향은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이때의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현실을 외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멍하니 보거나, 억지로 잠을 청하거나, 방에 칩거하며 자극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이 시기는 조카들의 언어가 눈에 띄게 발달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옹알이 수준이었던 조카들의 언어는 '엄마', '아빠'와 같은 단어의 형태를 갖추기 되었다. 나에게도 삼촌 대신 '따끼'라는 표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조카들의 발달은 행동 이외에도 말로 그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었다. 조카들 중에 우준이는 어려서부터 섬세한 성격이 곧잘 드러나는 편이었다. 조카들 집에 들어서면 우준이는 반갑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양말을 잡아끌며 "빼"라는 말을 자주 했다. 만나자마자 삼촌과의 이별을 불안해한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준이가 이별을 앞서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만나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조카들과 어울릴 때는 좋지만,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오면 우준이가 속상해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찾아가는 날이 줄어들수록 우준이의 언어는 정교해졌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났던 어느 날에는 나란히 앉은 나에게 "우리 집에 신비한 애벌레가 있는데, 같이 보러 갈래?" 물어본 적도 있다. 나는 조카들과 만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고는 했다. 어떠한 놀이를 하더라도, 그러한 활동으로 조카들이 기뻐하더라도 결국은 헤어져야 했으니까. 우준이가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그가 기대하고 바라는 만큼 좋은 삼촌이 되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면 고개를 가로젓기 일쑤였다.
이 당시의 우준이와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이별의 순간에 잠시 머물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사 때문에 경험했던 어려움을 곧잘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인식했던 상사의 안 좋은 모습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관계에서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마음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알아차리며, 진실에 가까운 언어를 주고받았을 때에 크게 타오르던 갈등의 불이 사그라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상사에게 가진 불만을 직접 꺼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 오히려 상사의 기분을 자극하여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화재로 이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친구나 동료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상사와의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삼자에게 하는 하소연이 상사로 인한 고통을 줄여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때로 갈등의 진원지가 아닌 낯선 자리에서 위로와 해결의 씨앗을 얻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부정적인 관계 경험을 꺼내며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수용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한다. 또한 상사와의 갈등을 친구에게 직접 얘기하지 않고도 해결에 다가서게 되기도 한다. 가까운 친구와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고, 친밀한 관계에 몰입하며,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형성하여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지키는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다.
이처럼 관계에서 생긴 어려움은 누군가를 향하고 통했을 때에 해소할 수 있다. 둘 이상의 사람이 맺는 것이 관계이며,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관계를 개선하기 어렵다. 그리고 관계에는 분명 타인이 존재하지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에게서부터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불편감을 느끼는 대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나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을 수 있다. 사람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 방식은 없으며, 고유한 나와 상대방이 저마다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관계의 기본 성질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경험이 부족했다. 누군가와 친해진 경험도 적었고, 솔직한 대화를 하며 감정을 나누어 본 경험도 드물었다. 그랬기에 나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타인과의 관계를 해칠 수 있는 위협적인 도구라고 판단하며 감추기에 급급했다. 나조차 알아주지 않는 감정을 타인이 먼저 알아주는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우준이에게 좋지 못한 삼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이러한 괴로움은 우준이의 행동 때문이라기보다는 우준이를 실망시켰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큰 나는 행동의 기준이 엄격한 편이다.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일삼게 하는 장치가 관계를 맺을 때면 내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우준이가 표현하던 서운함은 내가 만든 '착한 모습' 기계가 움직이도록 영향을 주었을 뿐이었다. 우준이의 슬픔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었던 그때의 나는 울고 있는 우준이를 뒤로 하고 서둘러 귀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회사에서 겪은 고통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회피를 조카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우준이의 슬픔은 나를 또다시 일상에서 도망치게 만들었다.
우준이는 여전히 헤어지는 상황을 어려워한다. 때로는 충분히 놀아주지 않았다며 토라지기도 하고, 등을 돌린 채 내가 현관으로 나갈 때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헤어지는 상황이 어려운 건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놀아줄 시간이 부족할 때에는 조카들이 보고 싶어도 선뜻 찾아가는 걸 어려워하고, 한창 놀다가도 문득 헤어지는 순간을 또다시 마주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헤어지는 상황이 전처럼 씁쓸하지만은 않다. 현실에서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외면하지 않고, 그 일에 가까이 다가섰을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상사로 인한 상처를 주변 사람들에게 기꺼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들을 꺼낼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상사에게 직접 얘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도 홀가분함을 느끼기도 했고, 내 곁에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내가 잘못해서 상사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이제 우준이와 헤어지는 상황이 오면 오늘 어떤 놀이가 제일 재밌었는지 물으며 대화를 이어가거나, 더 하고 싶다는 한두 가지 놀이를 짧게 하며 이별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눈물을 쏟을 우준이를 걱정하기보다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줄 우준이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우준이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좋은 삼촌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상사는 내가 표현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스스로를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며 지냈을지도 모른다. 모든 관계는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교훈을 깨닫게 했던, 여전히 아프고 쓰라린 기억들이다.
"삼촌. 우리 집에 신비한 애벌레가 있는데, 같이 보러 갈래?"
"우와, 진짜? 그 애벌레는 어떻게 생겼어? 지금 보러 가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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