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웃는다면 그게 뭐든 좋아

by 두근거림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영상통화를 자주 하던 때가 있었다. 화면을 공유하는 대상이 친한 친구나 연인이었다면 그래도 금세 수긍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네 살 차이가 나는 친누나였으니 나도 처음에는 어리벙벙했다. 핸드폰에 뜨는 낯선 화면과 주체를 확인하고 '왜 누나가 나한테 영상통화를 걸었지?' 그 의도를 먼저 의심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올 것이 왔다'며 익숙하게 전화를 받는다.


화면에서는 이윽고 조카들이 등장했다. 때로는 우준이가, 때로는 서준이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조카들이 보다 어렸을 때는 나 혼자 말할 때가 많았고, 가끔은 누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하는 말에 그저 반응을 하던 조카들이 표현에 능숙해지며 상황은 달라졌다. 누나가 자신의 의지로 전화를 거는 횟수는 줄어들었고, 조카들이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하거나 직접 전화를 거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가끔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끊으라고 하기에 적잖이 놀랄 때도 있었지만, 그동안 쌓은 추억이 참 많다.


얇고 작은 휴대폰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우리는 함께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만약 조카들이 밥을 먹고 있다면 "삼촌 한 입만"이라고 나는 말했고, 조카들이 화면 너머로 입에 넣어주는 시늉을 하면 맛있다는 표정으로 오물오물 씹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한글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끝말잇기를 하는 상황도 생겼다. 무려 30분 가까이 서로가 아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는데, 조카들은 즐거웠겠지만 나는 필사적이었다. 져준다고 하기에는 질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자 괜스레 승부욕이 생기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경험들 중에서는 약간의 위기감을 느꼈던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전화를 받으니 누나의 품에 안겨 무표정하게 화면을 쳐다보는 서준이의 얼굴이 나왔다. 대부분은 반가운 표정으로 통화를 해왔기에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다. 곧이어 누나가 "삼촌, 서준이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대" 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전화를 걸기 전에 서준이가 삐칠 만한 일이 있었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서준이에게 "무슨 일 있었어?" 물어볼 법도 한데, 이어지던 나의 대처도 떠올릴수록 우습다. 나는 사슴 같다는 얘기를 듣던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재밌는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 싶어서 입꼬리를 최대한 씰룩거리기도 하고, 콧구멍을 늘렸다가 좁혔다가를 반복했다. 그러자 살얼음 같았던 서준이의 얼굴에 순간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왼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어, 서준이 웃었네?" 하고 말하니 서준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웃어 보였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서준이를 웃기기 위해 들인 노력밖에 없었지만, 그에 대한 보상처럼 돌아왔던 서준이의 맑은 웃음은 내가 받았던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누나와 매형을 보다 보면 자녀들을 위해 못 해줄 것이 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아이들이 좋아하거나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다면 그것을 위해 어떠한 값을 치르든 해주려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간 부모님에게 받아온 것이 많다. 비록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부모님의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부모님은 자신들의 역할에 부여된 삶을 살기에도 충분히 바빴다. 아빠와 엄마에게 가정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였다. 그러나 가정을 구성하는 나 개인에 대한 세심한 관심은 늘 부족하기만 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던 것은 사실이다. 엄마와 아빠는 매 순간에 충실했다. 이제는 안다. 자신들의 마음조차 돌볼 여유가 없었을 테다. 부모님과 나의 나이차는 조카들과 나의 차이와 비슷하다. 만약 나에게 조카들만 한 자녀가 있고, 그들을 양육하며 살아야 한다고 한다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나 혼자 살기에도 이렇게 벅차고 빠듯한데 누군가를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삶은 그간 살아본 적이 없기에 겁이 난다. 또한 삶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면 그 사건의 충격과 여파가 더욱 거세고 진하게 전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조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의 최선을 '핑계'가 아닌 '해내고자 했던 최대한의 노력'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받지 못한 사랑으로 부모님을 바라보기에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고, 내가 만약 부모가 된다고 해도 자녀가 기대하는 만큼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은 애초부터 생기지 않는다. 한때는 조카들과 관계하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모와 아이들이 원하는 부모 사이의 균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잘 알아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관계를 단 하나 꼽으라면 역시 가족 관계일 것이다. 좋은 삼촌이 되고 싶으나, 조카들의 바람에 기꺼이 응답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어린 나를 바라보던 부모님의 삶을 조심스레 떠올려보고는 한다.


"따끼따끼, 뭐해?

"삼촌 공부하고 있는데. 삼촌이 공부하는 거 엄청 어려워"

"뭔데? 보여줘"

글자가 빼곡한 전공서적을 몇 초간 보던 이들은 이내 말을 잇는다.

"음... 자, 이제 공부 다했으니까 놀자!"


boy-g0924817d9_1920.jpg Image by Andi Graf from Pixabay


이전 04화너의 섬세한 언어에 조금 더 귀 기울였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