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는 자신의 내면에서 출발해야 한다

by 두근거림

서준이의 생떼가 심해진 시기가 있었다. 가지고 싶은 물건이 생겼을 때, 서준이는 크게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처럼 서준이가 자신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던 시기는 나의 권태가 깊어진 시기와 비슷하다. 기대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특히 그만두지 못하고 해내던 일에서는 즐거움을 찾기 어려웠다. 일은 때때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표현되지만, 보람을 느끼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사회복지사로서 이용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날에는 성취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성취감은 고인 물 위로 떨어지는 하나의 물방울에 불과했다.


우울감으로 인한 여러 증상 중에는 무가치감이 있다. 삶에서 자신이 '가치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에 우리는 무가치감을 경험한다고 표현한다. 사람마다 가치 있다고 느끼는 구석에는 차이가 있다. 누군가가 등한시하는 요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가치가 될 수 있다. 이때의 나는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롭게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누군가와 긴장이 흐르는 상태가 되면 나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긴장이 유발된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관계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이 업무는 누가 담당하겠어요?"


우리 부서에는 비슷한 영역의 일을 하는 세 명의 담당자가 있었다. 이 세 명의 업무가 최대한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회의가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기존에 맡고 있던 일들에 있어서는 모두가 자신이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예산이 크고 기대치가 높은 한 업무에 있어서는 하겠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고생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일 분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나는 당시 '이 일을 맡게 되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게 될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는 생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막이 길어질수록 '이 일로 인해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제가 해볼게요"


나는 오른손을 반쯤 들며 내가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안도의 표정을 짓던 동료들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처럼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는 게 두려워서 맡게 된 업무는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새로운 업무는 이전에 하던 일에 더해지며 야근을 잦게 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이는 동료들의 모습을 인식할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나를 위해서라면 분명 다른 동료들처럼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가치를 앞세웠고, 새로운 일을 맡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


우준이의 장난감을 갖고 싶다며 떼를 쓰는 서준이를 볼 때면 회사에서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우준이의 대처 때문이었다. 서준이가 우준이의 손에 들린 장난감을 지목하며 울기 시작하면 누나와 매형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했다. 때로는 그럴 수 없다며 서준이를 타이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우준이에게 양보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우준이가 자신의 장난감을 서준이에게 건네주면 서준이는 눈물을 그쳤고, 부모님에게는 착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자주 반복되었고, 우준이는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대게 포기했다.


서준이가 요구하고 우준이가 양보하는 상황을 경험할 때마다 내가 우준이에게 따로 해준 얘기가 있다. "우준이가 가지고 놀고 싶은 장난감이면 서준이가 달라고 해도 꼭 주지 않아도 괜찮아"였다. 하루는 우준이가 고른 장난감을 서준이가 달라고 했고, 우준이가 주지 않자 "나 안 해!" 소리치며 안방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거실에 남겨진 우준이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장난감을 서준이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만약 평소처럼 우준이가 장난감을 바로 양보했다면 서준이의 마음이 토라지는 상황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다는 마음은 우준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위바위보를 하고 이겨서 우준이가 먼저 선택한 장난감이었고, 우준이가 원치 않는다면 꼭 양보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우준이에게 "서준이의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거실에서 조금만 기다려보자" 말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서준이가 "이제 괜찮아졌어" 말하며 거실로 나왔다. 우리 셋은 각 자가 고른 장난감을 가지고 다시 놀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서준이가 우준이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다고 표현한 것은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준이의 마음이 또한 있으니 장난감을 줄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우준이의 자유였다. 장난감을 건네지 않음으로써 서준이와의 관계에 긴장이 생길 수도 있지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을 가정하며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수호샘, 이것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수호샘. 혹시, 이 일 좀 맡아서 해줄 수 있나요?"

업무 분장의 일을 제외하고도 동료들의 부탁을 받는 상황은 자주 발생했다. 내가 하던 일만으로도 벅차다고 느꼈었으니 동료들의 일을 도와준다는 것은 야근을 자처하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우준이에게 했던 말과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긴 우준이의 용기를 떠올렸다. 한 사람의 고유한 가치는 타인이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출발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그동안 평화로운 관계만을 유지하고자 노력했으니,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어려웠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가치는 타인과 긴장 상태에 접어들어도, 그가 나를 안 좋게 생각하더라도, 관계가 너저분하게 끝나더라도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우준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점차 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일목요연하게 서준이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물 흐르듯 말을 이어가는 우준이를 보며 내심 감탄한 적도 있었다. 서준이가 토라진 표정을 지어도, "우준이 너무해"라고 말을 해도 우준이는 마음에 드는 장난감, 그러니까 자신의 가치를 그럭저럭 지키게 되었다. 이제는 나의 차례였다. 한층 성장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거절을 표현한다. 가끔은 관계에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하고, 그러한 긴장이 내가 '나쁜 사람'으로 인식될 거라는 불안감을 일으키지만, 그 끝에 찾아올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괜찮은 선택이었다며 스스로를 격려하게 했다. 나에게 있어 내면의 가치는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평화를 깨더라도 해낼 수 있는 만큼의 일을 맡으며 '쉼'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찾아갔던 가치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조금씩 찾게 되었다. 해결되지 않는 일들에 골몰하지 않고, 지금 당장에 내가 좋아할 만한 일들을 의식적으로 하는 노력도 하게 되었다. 하나의 순수한 가치를 발견하고, 실현해가다 보면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사소하다고 느껴지는 가치라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나 자신의 태도가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경험이었다.


"따끼, 제발 빨리 놀자"

"따끼, 밥 좀 그만 먹어. 빨리 놀자"

우준이, 서준이와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자주 일어나는 상황이다. 이전의 나라면 밥 먹는 것을 멈추고 놀아주었겠지만, 내가 밥을 먹는 시간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적절히 거절하기 시작했다.

"삼촌도 제발... 삼촌 너무 배고파. 이것만 마저 먹고 같이 놀자~"


child-ga2bce564e_1920.jpg Image by Arek Soch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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