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늘어가는 건 나이와 주름, 주량과 뱃살뿐이야"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자주 듣게 된 말 중에 하나는 주량과 뱃살의 관계이다. 직장인들은 술을 참 좋아한다. 나이와 주름에는 다소 민감하면서도 술 때문에 늘어가는 뱃살에는 인심이 후한 편이다. 그만큼 술을 사랑하고,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그간 살아오며 많이 보아왔다.
얼마 전,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란 소설집을 읽었다. 책에는 술을 재료로 하는 일곱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어가며 나 또한 하나의 단편소설을 쓰게 된다면 이곳을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는 두 번째 직장이었다. 그곳은 동료들과의 술자리 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다. 회사 앞에는 아지트 같은 술집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이었다. 우리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상사들의 눈길을 피해 그곳에서 모이고는 했다. 한번 모일 때마다 6명 이상은 거뜬했다. 4명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말을 잘 꺼내지 못한다. 끼어들 타이밍을 적절하지 잡지 못하는 까닭이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말과 표정을 쫓으며 하고 싶었던 대부분의 말을 삼킨다. 페리카나에서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어색하게 웃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동료들을 1열에서 직관하며 호응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특별한 즐거움을 느끼고는 했다.
정목이형은 우리 만남의 기둥 같은 존재였다. 근속연수가 긴, 그러니까 회사에 대한 책을 집필한다면 일찍이 등장해야 할 중요한 인물이었다. 190cm에 가까운 큰 키에 덩치 또한 컸던 형은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든든한(?) 형이기도 했다 이러한 신체적인 특징보다도 정목이형은 소문난 애주가였다. 소주나 맥주, 막걸리처럼 술이라면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따금 소맥을 말아먹던 형의 두툼하면서도 날렵한 손가락은 떠올리는 나에게 여전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어떤 동료가 옆에 앉아도 팔뚝을 가볍게 때릴 수 있었던 정목이형은 또한 누구와도 가까운, 정이 많은 형이었다. 물론, 불편한 마음이 들면 어떠한 상사 앞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었기에 형의 정은 술자리에 동석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구석이었다.
술자리가 끝나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던 정목이형의 러닝메이트는 단연 이슬누나였다. 누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회식 문화를 그대로 답습해온 사람 같았다. 내가 마시면 너도 마셔야 하고, 내가 한잔을 비우면 너도 한잔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너도나도'에 대한 생각은 그리 크지 않아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내려놓아도 간단한 으름장을 놓을 뿐 억지로 마시게 하지는 않았다. 누나의 주량은 또한 정목이형처럼 대단했다. 하루는 누나의 속도를 따라가다가 가까스로 도착한 내 방 침대에서 공중부양을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누나가 가끔씩 잔이 여전히 비어있다고 말할 때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평소 누나가 나를 대하던 마음을 알았기에, 함께 잔을 비우자는 말이 누나의 포용적인 마음씨라는 것을 느꼈기에 나는 '짠'이라는 말에 점차 애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들과 함께 했던 술자리가 나에게는 가장 그립고, 즐거운 술에 대한 기억이다. 이외에도 많은 동료들이 그곳에 함께 있었고, 퇴사한 사람들의 자리는 새로 입사한 사람들로 채워지고는 했다. 치킨과 어묵탕, 낙지볶음, 고르곤졸라 피자라는 이질적인 메뉴들을 시켜놓고 떠들썩하게 놀던 그들과, 그들 못지않게 들썩거리던 내 마음은 언제, 어디서 다시 떠올려보아도 설렌다. 나는 가끔씩 '적당히들 취하고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남몰래 품기도 했었지만, 모임 날짜가 정해지면 빠짐없이 찾아가 그들과 함께 마음을 기울이고는 했다. 그들은 달궈진 얼굴을 하고서 술 때문에 생긴 뱃살에 대해 한 번씩 얘기하고는 했다. 정목이형은 심지어 뒷산처럼 볼록해진 배를 움켜쥐며 그 이유를 직장에서 찾고는 했다. 물론, 입사하며 더 자주 마시게 되었다는 동료들이 아무래도 많았지만, 입사 전부터 술을 즐겨 마셨다는 동료들의 얘기를 '오, 그렇구나' 생각하며 들었던 기억도 제법 또렷하다.
내가 처음 술을 마시게 된 것은 대학교 입학 전이었다. 할아버지를 뵈러 시골에 갔다가 고모부가 따라 준 소주 한잔을 단번에 마셨었다. 원해서 마셨던 것은 당연하게도 아니었다. 그 한잔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지압하며 집으로 가는 내내 고생했던 일은 술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대학교에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07학번인 내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했다. 또래 중에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 드물었고, 술자리에 한두 번 빠졌던 친구들이 무리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동기들과 어울리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었던 나는 쓰디쓴 술을 요령껏 마시기 위해 노력했다. 한잔을 세 번 정도 꺾어마시는 것은 기본이고, 물을 따라 마신 적도 많았다. 물론, 선배들과 동석하는 자리에서는 오직 정신력으로 승부를 봐야만 했지만.
내 주량이 소주 반 병이라는 것도 대학생 때 알게 되었다. 하루는 네 잔 정도를 빈속에 연거푸 마신 적이 있었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니 갑자기 어지럽고, 찬기가 머리로 몰려드는 게 느껴졌다. 그날 나는 두 정거장마다 한 번씩 지하철에서 내려 화장실에 들르는 최악을 경험했다. 세면대에서 입을 헹굴 때마다 '아아아ㅏㅏ아ㅏㅏㅇ' 절규하던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또한 서른이 되기 전까지 내게 술은 억압해오던 부정적인 감정과도 같았다.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술과 부정적 감정이 주는 공통점이었다. 나는 특히 분노라는 감정으로 인해 돌발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분노 표출이라는 폭탄에 달린 도화선이 얼마나 짧은 지를 실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무시받고 있다고 느낄 때 친구들과 다툼이 벌어지고는 했다. 대부분은 친구들이 먼저 빌미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싸움으로 키운 것은 나였다. 때로는 그 행동이 정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때로는 원치 않는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내가 학교생활을 하며 가장 행복해하던 해였다. 담임 선생님의 꾸준한 지지와 관심을 토대로 등교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공부에 더 흥미를 느끼지는 않았다. 친구들을 딱히 더 많이 사귀게 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담임 선생님이 작은 변화라도 그 시도를 알아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다정한 모습에서 당시의 나는 명명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사랑받았다'는 걸 알고 있다. 내향적이고 소심했던 내가 확신이 들지 않는 상황에서도 손을 들고 발표하던 모습은 여전히 신기하기만 하다. 그만큼 나는 선생님이 주는 사랑이 좋았고, 그 사랑을 더 받고 싶어서 노력하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에 선생님을 실망시키는 상황이 벌어졌다. 방과 후에 친구들과 피구를 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화장실에 갔었고, 나와 한 친구 둘만 남았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나의 머리로 피구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깔깔거리며 머리를 맞추는 친구의 행동에 그만 참지 못하고 그의 발을 찼다. 친구를 때리고 싶어서 찬 게 아니라 무시받는다는 느낌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지키라고 시킨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었다. 한 번의 발차기 이후로 동력을 잃은 나는 친구에게 여러 번 얻어맞았다. 그 이후로 친구와 어떤 선생님의 제지로 싸움은 끝이 났고, 교실에서 지켜보던 담임선생님이 다가와 처음부터 지켜봤다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날은 5학년으로서 며칠 남지 않은 때였고, 내가 6학년이 되면서 담임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그간 나에게 술이란 초등학생 때로 회귀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주는 두려운 맛이었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고 내면의 나와 접촉하는 경험이 쌓여갈수록 나는 술을 좋아하게 되었다.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친구의 장난스러운 행동조차 나에 대한 공격이라고 여기던 결핍된 나를 수용하고 안아줄 넉넉한 마음과 품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술 때문에 나조차 모르는 나의 특정한 모습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할 거라는 생각이 비합리적이고, 현실성 없는 상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안에는 내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괴물 같은 구석은 없었다. 실재하지 않았다. 마음이 만약 바다라면 나의 심연에 다만 필요했던 것은 온전한 볕, '괜찮다'는 누군가의 눈빛이었다.
나는 오늘도 술을 마실 생각이다. 새해를 맞아, 방 안에서 혼자 맥주 한 캔을 모두 마셔볼 작정이다. 주량껏 마시는 것이기에 출근해야 하는 내일이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내일의 나에 대한 생각은 내일의 나에게 맡겨볼까 한다. 나는 오늘 술을 반드시 마실 것이고, 지금 미리 걱정한다고 해서 내일의 내 삶이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고생한 오늘의 나를 위해, 여전히 누군가의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그마한 나를 위해, 짠.
글을 다 쓰고 보니 왜인지 모르게 쓸쓸한 마음이 든다.
허전하고, 외롭다.
오늘은 아무래도 이 노래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