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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05. 2023

저는 아무래도 글 쓰는 게 좋아요

오늘은 한 가지 고백을 해볼까 해요. 저는 사실 전 직장에서 퇴사하며 한 가지 결심을 했었어요. '퇴사 후의 매일, 매일을 기록해 보자'라고요. 하지만 제 결심은 실패로 돌아갔어요. 당장에 글을 쓰는 일보다 더 시급하다고 여겨지는 사건들이 자주 발생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작심삼일이라는 표현이 있듯, 제가 딱 3일 동안 글을 연달아 썼더라고요. 오늘은 그중에서 하나의 글을 이곳에 옮겨볼까 해요. 사실 글이라고 말하기 좀 그래요. 누군가에게 보여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마음을 따라 적었으니까요.


제임스 W. 페니베이커와 존 F. 에반스가 쓴 <표현적 글쓰기: 당신을 치료하는 글쓰기>에 따르면 최소 20분 동안 4일 연속으로 하는 자신의 관한 글쓰기 활동이 심리적인 치유에 효과가 있다고 해요. 저는 비록 3일 동안 썼지만, 매 회 20분 이상 검열 없이 글을 썼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아래에 옮기며 고치고 싶은 유혹을 가까스로 견뎌낸 글을 이제 소개할게요.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 일과 시간에 쫓겨 숨 가쁘게 살아온 지난 1년에 대한 보상심리였다. 퇴사하고 바로 그다음 날로 예약했으니 당시의 내 마음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보여준다. 용문산 중턱에 위치한 용문사를 선택했다. 서울은 가깝고, 대전이나 강원은 멀었으니. 어떻게 보면은 나에게 있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짐을 꾸리면서도 피곤했다. '한 시간만 더 있었다면 낮잠이라도 잘 텐데..' 하는 생각을 몸은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놓칠 뻔했던 7-8 버스에 가까스로 오르며 용문사에는 제시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수행복과 명찰을 받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남짓한 방에 화장실과 침구류 장이 있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시끄러운 소리를 자아내는 선풍기가 있었지만 필요는 없었다. 크기가 큰, 이를테면 2절지 정도를 붙여 놓은 같은 커다란 창문으로 용문산의 여름이 솔솔 불어왔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새들의 새초롬한 울음소리, 숲을 쓸어내리는 손결 같은 바람, 어떠한 일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은 것 같은 나무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신청했기에 오리엔테이션만 참석하면, 혹은 그마저도 의무로 참석해야 하는 일정은 없었다. 나는 공양을 하거나 짬짬이 산책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이런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의외로 이번 템플스테이에서 고대했던 창밖을 보며 멈춰있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당장에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써서 어떤 일을 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재촉하며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전 직장에서 온 연락은 없는지, 친구에게 온 메시지는 없는지 확인했고, 괜히 인터넷에 들어가거나 넷플릭스를 켰다.


처음에는 외로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과거 논물을 쓰던 시기에 흔히 겪었던 허전하고 쓸쓸한 상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틀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날이 되어서야 내가 왜 그토록 가만히 있기를 어려워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그간, 그러니까 전 직장에서 근무하던 1년간 수많은 자극에 노출되었었다. 숱하게 걸려오는 전화, 만나는 사람, 터지는 상황과 해결해가는 과정들이 나를 결코 안정적인 상태로 놔두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자극에 익숙해져,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는 템플스테이에서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날카로운 송곳으로 마음 이곳저곳을 찌르고 있었다.


이윽고 앉아서 견디고 견딘 끝에 나는 한 마디 말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간 내 마음이 이토록 소란스러웠구나'. 나는 단순히 외로워서가 아니라 자극적인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지듯, 마음에 해로운 날 선 자극들을 겪어가며 그러한 상황을 경험하는 나에게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일째가 되어서야, 아니 하산을 한 시간 앞두고서야 내면의 평화가 찾아왔다. 마치 몇 달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용문산의 일부가 된 것처럼. 어떠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앉아 호흡하며 산 풍경을 바라본다.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속세의 맛이 그립다고 했는데. 다시 겪게 될 소란스러운 일상들이 두렵다.  


Image by Joshua Woroniecki from Pixabay


새로운 곳에 입사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즘 제 마음이 소란스럽다는 것을 자주 깨닫고는 해요. 글을 다 쓰고 보니 제가 요즘 날 선 자극들에 많이 노출되었고, 괴로웠을 제 마음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소홀했던 것 같아요.  


자연스레 글을 쓰는 데에 들이는 시간도 줄이게 되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인데 말이에요. 아무리 일이 많아도, 그 일들을 실수 없이 처리하고 싶은 저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역시 이곳에 자주 들러야 할 것 같아요.


참고:  James W. Pennebaker & Jone F. evans(2017) 표현적 글쓰기(이봉희 옮김). 서울:엑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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