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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y 07. 2023

사람으로 이어진 곳에 행복이 있다

한 달에 하루, 토요일이면 회사에 출근한다. 당직 근무 때문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토요일마다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매주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있고,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있다. 당직 근무자는 상시 프로그램이 매끄럽게 이루어지도록 보조하는 게 주된 일이다.  


한 달에 한 번, 대체휴무나 시간 외 근무 수당을 받으며 일을 한다. 근무는 괴롭기 그지없다. 텅 빈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부터 고되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 밀린 업무에 집중하려 해도 관리자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손가락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동료들의 빈자리를 의식할 때다. 특히, 혼자 근무해야 하는 날이면 현타가 크게 온다. '토요일 이 시각,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이 순간, 동료들은 어떤 주말을 보내고 있을까?' 대답할 기회는 없다. 생각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면 뭐 하고 있었을까?' 아마 집에서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김밥을 사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고, 몰입을 기대하며 산책을 하거나 글을 썼을 것이다.

 

이처럼 보내지 못한 시간에 대한 갈망은 회사에 진실로 머무는 것을 방해한다. 평일보다 분명 업무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다. 전화가 딱히 걸려오지 않고, 동료들과 불필요한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지도 않으니 마음만 흔쾌히 동의해 준다면 밀린 업무를 속도감 있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어김없이 생각에 빠진다. 마음은 오늘 근무를 받아들이지 못한 듯하다. 과거 사회복지기관에 종사할 당시, 일 년간 토요일 근무를 해야 했다. 그 기관에서 오래 유지해 오던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출근해야 했기에 모든 팀원들이 기피하는 프로그램이었고 차례는 일 년씩 돌아갔다. 순서가 되어 맡게 된 프로그램은 장애가 있는 이용인들이 참여하는 수영이었다. 안전과 프로그램 효과를 고려하여 내가 담당한 해부터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하는 수영으로 방식이 바뀌었다. 부모 중에 한 명이 초급반에 참여하는 아동과 짝을 이루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다만, 부모와 아동의 성별이 다르거나 부득이하게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부모를 대신할 인력이 필요했다. 수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인원을 사전에 확인하고, 그에 맞는 자원봉사자 모집이 필요했다. 자녀의 성별을 고려해야 하니 때로는 남자 자원봉사자가, 때로는 여자 자원봉사자가 더 필요했다. 또한 장애 정도를 고려하여 세심하고 꼼꼼한 매칭이 중요했다. 보다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아동에게는 믿을 수 있는 자원봉사자와 짝을 지어주었다.


나로 하여금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는 일임이 분명했다. 타 기관의 수영장을 빌려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용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또한 수영장 바닥은 물기로 그득했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걱정은 강박처럼 따라다녔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워낙 많았기에 손을 잡고 탈의실과 수영장을 오갔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부모와 자녀, 중급반 이용인, 강사, 자원봉사자까지 포함하여 하루 30명 이상이 신경 써야 하는 대상이었다. 우선 참여자들이 수영장에 도착하면 출석을 체크한다. 아이들의 컨디션 같은 특이사항도 확인한다. 자원봉사자들이 하나 둘 도착하면 그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나 주의사항에 대해 교육한다. 참여자들이 대부분 수영장으로 들어가면, 뒤이어 탈의실로 들어간다. 아이들의 탈의와 세면을 함께 도우며 나 또한 물에 젖는다.   


수영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내 존재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다. 부모들과는 주로 자녀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우리 아이가 물에만 들어오면 그렇게 좋아해요"라든가 "우리 애가 요즘 그렇게 말을 안 들어요"하는 하소연을 듣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아이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지금 즐거워 보이는구나", "아이고, 요즘 엄마 말씀을 잘 안 듣는구나?" 대화는 그들의 동작으로 퍼지는 물결처럼 자연스레 이어진다.


수영 프로그램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이 편안하게 활동하도록 돕는 것 또한 나의 몫이었다.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봉사자들에게는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오랜만이에요", "한 주 잘 보내고 오셨어요?" 간단한 인사에도 우리 곁으로 볕이 스미는 듯했다. 지하 수영장이었지만 윤슬처럼 일렁이는 무언가를 분명 보았다. "수영장에서 하는 봉사활동은 처음이시죠?" 처음 만난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살갑기 위해 노력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수영장 안에서는 달랐다. 강사들과도 아이들의 상태나 영법 지도에 관해 간략히 나누며 교류하기 위해 노력했다. 몰입하고 있었다. 수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안전과 즐거움을 생각하며 행동했다. 나의 행동을 크게 의식할 이유도 없었고, 그래야 할 필요도 딱히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이용인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중간에 그만둔 참여자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은 매회 열성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자원봉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하루 참여하고 다시 오지 않는 자원봉사자들도 있었지만, 입소문(?)을 듣고 신청한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일 년 동안 큰 사고 없이 프로그램을 마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꾸준히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컸다. 아무리 빠르게 걸어도 3개 레인의 참여자 모두를 세심히 살필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즐겁기 바라는 마음으로 수영장 곳곳에 그들이 머물렀기에 참여자들의 건강과 만족을 지킬 수 있었다.  


한 번은 보호자와 시설 이용인 간에 다툼이 생긴 일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보호자가 화가 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타 기관의 시설을 빌려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실무자로서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보호자가 속상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기를 한 편으로 바라면서도,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랐다. 상황은 그 자리에서 그럭저럭 마무리되었고 여전히 젖은 옷을 입고 있던 나는 삼십 분가량 보호자와 통화하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죄송한 마음이었다.


한 주 동안 수영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으로 골몰하다가 출석부를 챙겨 수영장을 빠져나올 때면 일종의 쾌감 같은 게 느껴졌다. 수영장 락스 냄새를 뒤로하고 유유히 걸어가다 보면 짜릿함이 머리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러한 감각을 처음에는 주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생각에 기안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 강사, 자원봉사자들과의 관계에 몰입한 순간 덕분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책 <다정함의 과학>에서는 여러 연구를 예시로 들며 '사회적 연결'이 개인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공동체의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하며, "웃음과 따뜻함, 존경, 신뢰, 배려, 지지는 신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얘기한다.


퇴근길에 커피 우유를 하나 사들고서 인근에 있던 공원 벤치에 앉아 있으면 행복했다. 세상을 전부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한강이 보이기에 경치도 근사했고, 해가 저물어가는 광경이 익어가는 나의 하루처럼 노곤했다. 더 열심히 일한다고 성과를 인정받는 것도 아니었다.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참여하기를 스스로 선택했다. 레일 주변에 멀뚱히 서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을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관계에 몰입한 사람들이 안전하고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빠져들었다. 출석 확인부터 뒷정리까지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나는 웃고, 이따금 신뢰와 배려, 지지와 존경을 받았으며, 따뜻함을 나누었다.


그 맛이 그립다. 말라가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마시던 커피우유의 맛이 참 좋았는데. 군더더기 없던 수영장에서의 움직임은 함께 하는 이들을 위한 진심 어린 마음이었는데. 모두가 연결되어 있던 수영장에서의 시간을, 토요일 근무를 나는 좋아했는데.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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