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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07. 2016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나의 퇴사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사람에게 있어 이름보다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은 무엇일까? 고유명사처럼 존재하는 그 사람만의 특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착하다거나 나쁘다는 등의 단순한 특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잠시, 두 눈을 감고 과거에 ‘착하다’라고 느꼈던 두 사람을 각각 떠올려보자. 언뜻 비슷한 이미지일지라도 우리가 착하다고 느꼈던 포인트는 다르며,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느낌 또한 같지 않다.


한 사람의 특징은 성향과 경험, 상황에 따라 일정한 폭을 가지고 있지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성을 가진다. 관계를 통해서만 그 특징이 드러나므로 마주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여러 갈래로 해석 될 수 있다. 전 직장에서 내 이름 곁엔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수식어가 바로 “친절하시네요.”였다. 나로서는 당연히 해야 될 일을 조금 더 신경 써서 부드럽게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자연스레 친절한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친절한 사람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며 동경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나만의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이 진정한 나라며 사람들 앞에 소리 내어 외치고 싶었다. 그래야만 웅크리고 지냈던 지난 시간들을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보이는 동료들의 모습이 그들의 전부라고 믿었다.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한 가정의 아버지거나 어머니였고, 아들이나 딸이었으며, 소중한 친구이자 든든한 이웃이었다. 술 한 잔에 받은 상처들을 위로하며, 불안한 내일을 이겨내기 위해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던,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나를 자주 질책하던 과장님의 취미는 요리였다. 주말이 되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예쁜 접시에 담아 아내와 함께 먹는 순간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때 보았다. 가족을 생각하며 이야기하던 과장님의 눈이 얼마나 맑고 깨끗했는지를.


기분파였던 대리님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셨다고 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꾸준히 쓰며 습작 노트를 여러 권 가지고 계시다는 대리님. 옛 노트를 회상하던 대리님의 눈에선 석양 질 무렵이 연상되었다.


두 상사와 대화하며 바라보았던 그들의 눈은 아름다웠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의 내 모습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상사든 후배든 결국 직장에 소속된 입장이다. 만약, 직장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직급이 과장이었다고 하자. 어땠을까. 외로웠을 것 같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중대사를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다. 경험하지 못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무게감이겠지. 나의 직급이 대리였다고 하자. 어땠을까. 두려웠을 것 같다. 승진을 하긴 했지만, 아직 직장에서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치열함이었겠지.


나는 다 지난 일들을 들추어내며 그들을 가해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개인의 기억이란 기록과는 다르게 정확하지 않다. 기억은 점차 희미해졌고, 희미해진 공간에는 그들에 대한 안 좋았던 내 감정들이 반영되었다.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은 없다. 단지, 직장이라는 특수한 여건이 나로 하여금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나만 생각한다면 그들은 나쁜 사람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쁘다’라는 틀 속에 그들을 가두기에는 제한적이다. 나 또한 “친절하시네요.”라고 불리기 싫었던 것처럼 개인을 단 하나의 특징으로만 부를 수는 없다.


나를 ‘친절하다’라고 부른 사람들을 용서하고자 한다. 또한 내가 ‘나쁘다’라고 불렀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각 자의 삶이 있었고, 맡은 바 역할에 따라 노력했으며, 서로가 달랐을 뿐이니까. 오히려 내 인생의 한 순간을 함께해 준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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