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May 30. 2024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동해시에는 '묵호'라는 지명을 쓰는 기차역이 있다. 내가 거주하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기도 하다. 한 달 살기 이후에는 곧장 취업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치르게 될 면접을 생각하며 역 가까이에 숙소를 구했다. 강원도 생활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최근까지 면접을 한 번도 못 본 것은 계획과 달랐지만. 서울에서는 '나 기차역이오' 느낌이 강하게 드는 서울역이나 용산역을 주로 이용했다. 반면에 층이 낮은 건물들 틈에 위치한 묵호역은 동네라는 인상을 준다. 역 주변을 산책하다 고개를 들면 하늘을 차분히 감상하게 된다. 고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있던 도시와 달리 너른 세상이 걸음을 절로 가볍게 한다. 


편안함을 이내 느끼게 하는 묵호에서 자주 가는 식당이 한 곳 있다. 묵호역에서 도보 5분 이내에 위치한 보리밥집이다. 단돈 육천 원을 내면 뷔페처럼 이용할 수 있다. 비빔밥을 기호에 따라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반찬의 종류가 다양해서 집밥이 그리웠던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큰 만족감을 경험할 때면 나의 상상 속 밴드가 연주를 시작한다. 흥이 절로 돋워지며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박자를 탄다. 그토록 원하던 제육볶음에 상추쌈을 더하니 맞은편에 낯선 사람이 앉아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까딱하면 젓가락으로 식판을 두드릴 뻔했다.  


쌈을 그득히 먹고 묵호항으로 걸어갈 때였다. 항 주변에 있는 한식 뷔페를 우연히 발견했다. 비슷한 구성의 식당을 직전에 다녀와서 눈길이 더욱 갔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었다. 두 식당의 가격을 따져보고 심지어는 걸음을 잠시 멈추어서 음식이 몇 가지나 될지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평소라면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쳐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앞서 이용한 보리밥집이 가성비가 좋고 맛도 더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했다. 


선택의 과정에서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무엇도 하지 않는 선택일지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무언가를 고른다. 중요한 일일수록 그것을 고르기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고민 끝에 고른 보기가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때면 후회에 곧잘 빠지게 된다. 그러고는 과거에 그 보기를 골랐던 자신을 탓한다. '어이구, 어이구. 또 일을 저지르고 말았네. 네가 그럼 그렇지' 스스로에게 거센 꿀밤을 때리듯, 자책의 레퍼토리가 위와 같이 펼쳐진다.


묵호항 주변의 한식뷔페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 까닭은 최고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하든 이것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찾으려 한다. 고작 점심 한 끼를 사 먹은 일로 스스로 내린 선택을 평가해야만 하는 내가 나조차 의문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마땅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근거는 타인들에게 나를 그럴싸한 존재로 보이도록 하는 유용한 방식이라고 믿어 온 나에게는 한편으로 익숙한 모습이기도 하다.


잘 해내고 싶고, 잘 해내지 못했더라도 최선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욕구는 누나와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누나와 나는 네 살이 차이 나지만, 성숙함의 정도는 나이로 비교할 수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으로 기억한다. 누나와 나는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저금통에 돈을 모았다. 저금통은 안방 텔레비전 옆에 나란히 있었다. 내 저금통은 파란색, 누나는 분홍색으로 누구의 것인지 육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하루는 누나가 모은 돈에 욕심이 났다. 정확하게는 수북이 쌓인 파랑 저금통 속 동전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며 칭찬의 말을 할 부모님의 반응을 갖고 싶었다. 텔레비전을 보며 무거운 저금통에서 가벼운 저금통으로 동전을 한 개씩 옮겼다. 얼마나 옮겨야 적당한지 알지 못했다. 만화가 끝날 때까지 손은 분주히 움직일 뿐이었다.  


누나의 저금통에 손을 댄 날, 부모님과 함께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 동전을 서로 세어볼 때였다. 누나는 동전 세는 걸 일찍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더 오래 세었기 때문이다. 누나는 큰 소리로 "저거 내 거야!" 외쳤다. 누나의 손은 곧이어 각자 쌓은 동전 탑을 헤집어 놓았다. 동전들이 일순간 와르르 쏟아지며 내는 소음보다 누나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부모님은 내게 동전을 몰래 옮겼는지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떡하지...' 하는 아빠의 혼잣말을 끝으로 이 날의 광경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누나는 내게 뛰어넘고 싶은 대상이었다. 엄마는 수시로 '네 누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어" 말한다. 누나는 독립적인 아이였다. 기본적으로 모험심이 강하기도 하고 자립심이 높아지도록 성장한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테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있어서는 부모님과의 충돌을 감수하면서도 해냈다. 인문계로 진학하라던 아빠의 기나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실업계로 입학했다. 고등학교에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했다. 그 회사에 다니며 야간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두 아이에 엄마가 되었으며, 같은 회사에 여전히 재직 중이다. 


Image by マサコ アーント from Pixabay


누나는 성인이 된 내게 쓴소리를 종종 했다. 대부분은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처럼 내 생각을 물어보았다. 가끔은 '이렇게 해', '저렇게 해' 지시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짐짓 딴소리를 하며 대답을 회피하는 선택을 반복했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하루는 누나가 자신의 회사 앞으로 나를 불렀다. 줄게 있다며 부른 누나와 마주 앉아 초코바나나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누나는 나를 지긋이 보다가 갑자기 진로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너 어떡할라고 그래?" 나의 태도를 지적하던 누나가 끝내 토해낸 말은 걱정으로 위신한, 모멸감을 일으키는 격정의 언어였다. 고개를 이내 숙이고 있던 나는 유리로 된 컵을 그저 만지작거렸다. 


요즘 애들은 영어 공부나 자격증 준비, 어학연수니, 유학이니 취업에 도움 되는 거라면 뭐든 하려고 하던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해외로는 못 가더라도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야지.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으면서 죽기 살기로 취업 준비는 하지 않고, 태평하게 그게 지금 뭐 하는 거냐?


누나의 눈을 나는 바라볼 수 없었다. 수치심으로 인해 몸이 떨려왔지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모님처럼 느껴지는 누나를 언제부턴가 따랐다. 누나를 질투하며 뭐라도 이겨보고 싶던 마음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사라졌다.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누나를 나는 이길 수 없었다. 누나를 넘어서는 평가를 부모님으로부터 기대하기보다는, 누나로부터 인정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누나가 기대하는 대학생으로 살아가지 않았다. 동일한 시기의 대학생들처럼 치열하게 살아가지도 않았다. 마음이 항상 공허했다. 무언가에 몰두하기도 싫고, 하지도 못했다. 길로 나서려고만 했다. 그래도 걸으면 기분은 다소 나아졌으니까. 그 누구도 나의 내면으로 깊이 뿌리내린 우울을 알아주지 않았다. 나조차 알지 못했다. 일상을 뒤엎은, 결국 해내지 못할 거라는 신념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방치되도록 했다. 누나의 직언이 옳았다. 그러나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생각하지 않았다. 못했다.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때의 나는 하루씩 살아가는 일조차 버거웠으니까. 그러므로 스펙이 높다거나 일찍이 취업에 성공했다는 누군가들을 질투하기 시작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최근 나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사람들은 글을 쓰는 이들이다. 나는 구독자들의 관심이 외부로 드러나는 작가들을 부러워한다. 특히 인기가 많을 만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독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작가들을 보면 시샘하는 마음이 불현듯 일어난다. 그들에게는 분명 관심을 받을 만한 저마다의 근거가 있다. 나는 다만 질투심이 앞서 그 이유를 살펴볼 여유가 없을 뿐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아주 유명한 작가들에게는 외려 질투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누나처럼 감탄이 나오게 하고, 인정받고 싶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납득되지 않는 무언가를 인식하게 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반면에 나와 비슷한 범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독자들의 반응을 끌면 그렇게 배가 아플 수가 없다.


질투라는 감정은 특정 대상보다 잘 해내고 싶은 분야가 있고, 그 정도가 깊을수록 커진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과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평가받는 지점에 주의를 기울이며 보완해 가면 미약하더라도 점차 능숙해질 가능성은 커진다. 그렇지만 질투심에 사로잡힐수록 '나의 면'은 보려 하지 않고, 타인의 '잘 해냄'에서 근거를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님께 인정받는 누나의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은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닮을 있는 아니었다. 나는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성향으로 태어났다. 부모님 밑에서 내향성강화되도록 성장했다. 하고 싶으나 해낼 없을 거라고 믿는 도전적인 행동을 하며 누나는 부모님에게 믿음을 받았다. 그런 누나를 보며 질투하는 마음을 키워갔다. 보란 듯이 자신이 계획한 대로 삶을 살아가는 누나를 보며 언제부턴가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칭찬받고 싶었다. 어쩌면 글쓰기뿐만 아니라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잘 해내고 싶은 많은 순간들에서 타인을 향한 남모를 질투심으로 초조했는지도 모르겠다. 


강원도에서의 나는, 그간의 삶을 돌아보는 나는 인심을 후하게 쓰고 싶다. 가성비가 어떻고, 맛이 저떻고 따지는 일이 무엇이 중요할까. 보리밥집에서 이미 배 두둑이 먹고 나온 것을. 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묵호항 근처 뷔페도 이용해 보고 직접 비교해 보면 될 텐데. 보리밥집을 이용하기까지 또한 그렇게 망설였으면서. 이럴 때는 역시 '오, 항 근처에도 비슷한 구성의 뷔페가 있네. 다음에 꼭 이용해 봐야겠다'는 보리밥집에 있어 또 다른, 어쩌면 괜찮을지 모르는 식당을 발견한 데에서 기쁨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만족감을 보다 느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이 아닌 '나'라는 고유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나로부터 삶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질투하며 시간을 가만히 보내는 일은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다. 질투심을 유발하는 특정한 상황에서 나로부터 상대방을 차분히 관찰하며, 이 순간에 나에게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삶을 위한 중요한 도전이 될 테다. 


생떼를 쓰더라도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듣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글을 쓴다. 무엇이 부족할지 타인의 글을 읽으며 고민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방법을 찾기 위해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다시 쓴다. 

좋아하고, 잘 해내고 싶은, 무수히 많은 활동들 중에 단 한 가지가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일정한 시간을 내서 특별한 장소에 다녀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여행을 떠나고 있다. 같은 하루는 이 세상에 없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 만나는 사람, 다녀오는 곳, 모든 것들이 날마다 새롭게 우리를 맞는다. 

마음으로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의 선택이 지겨운 하루를 신비로움이 가득한 여행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이전 13화 그래도 이제 나는 내가 잘 해내고 있다고 믿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