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Oct 27. 2024

나를 위해 기꺼이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1

'티디디디디디딕'

"어어.. 이게 무슨 소리지..?"

예상치 못한 기괴한 소리에 혼잣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티디디디디디디디딕'

자동차 계기판에 스마트키를 인식할 수 없다는 문구가 떴다. 때는 바야흐로 추석 연휴였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진땀 빼며 검색해 보기를 한참. 오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게 의식되어 숨고 싶은 욕구를 견디며, 생애 최초로 자동차 보험사에 전화하기에 이르렀다. 


"배터리가 방전됐네요. 일시 충전 도와드릴게요"

만약,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 시동이 걸리지 않고, '티디딕'거리는 소리만 난다는 걸 알았다면 진작에 보험사로 전화했을 것이다. 아니, 방전될 위기에 있다는 걸 알았다면 미리 교체했을 것이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다시 방전되면 그때는 교체하라는 기사의 말이 또한 마음이 쓰였다. 명절이 끝나고 카센터에 곧장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2

"수호야, 내일모레 집 보러 같이 다녀오자"

비싼 집값으로 독립의 꿈을 접어가던 내게 엄마는 말했다.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아현동에 괜찮은 매물이 나와있다고 했다. 어안이 다소 벙벙하였으나 알아봐 주었고, 발달상 독립이 늦었다고 생각(?)되었으므로 흔쾌히 다녀오자고 대답했다.


"수호야, 집 어때?"

부모님은 이런 질문을 왜 판매하는 사람 앞에서 하는 걸까. 공인중개사, 집주인과 나란히 서있는 공간에서 엄마는 물었다. 아빠는 진즉에 구경을 마치고 빌라 밖으로 나가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꺼려졌지만, 

이들에게 내 의시가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되려면 느낀 그대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화장실 문이 계속 마음에 걸려요"

변기를 최신 것으로 바꾸니 화장실 문이 닫히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튀어나오는 변기 크기만큼 화장실 문을 잘라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혼자 주로 생활할 거라지만 괜히 쑥스러웠고, 손님을 초대하기가 꺼려질 것 같았다. 

부동산으로 돌아가서 근처에 다른 매물은 없는지 엄마가 물었다. 공인중개사는 예상한 금액보다 조금 비싸지만 크고 괜찮은 집이 하나 있다고 했다. 막상 보더라도 계약하려면 대출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보러 가기를 원치 않았다. 엄마와 아빠, 매형까지 공인중개사 두 명과 함께 나를 둘러쌓고 앉아 다녀오자고 했다. 독립을 원하는 게 누군지 다소 의심스러운 상황임이 분명했다.  


"이야, 집 깔끔하고 괜찮네, 경치도 좋다"

"수호가 좀 조용한 거 좋아하잖아. 딱 좋네"


내게 어떤지 묻기도 전에 도움을 주기로 한 가족들이 적합성을 검증했다. 입을 모아 내게 딱이라고 했다. 5분도 채 둘러보지 않았는데 아빠는 "너 어떻게, 계약할 거야? 말 거야?" 물었다. 공인중개사는 뒤에서 거들뿐, 가족들의 구매 독려와 설득이 이어졌다. 회사로의 출, 퇴근 거리나 주변 인프라 등 내게는 매력적인 집은 분명 아니었다. 다만, 동네의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심지어는 "모든 걸 그렇게 다 따지면서 집을 계약할 순 없어"하며 타이르는 아빠의 말로부터 즉각적인 결정은 내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사이 집이 팔리더라도 며칠만 생각해 보겠다고 공인중개사에게 말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른거리던 동네의 경치, 햇빛이 스며드는 창가, 그곳에 머물며 한낮을 만끽할 수 있다면...'


집을 보러 다녀온 그날 밤부터 상사병에 시달렸다. 전세 매물이고, 대출을 받아야 했지만, 얼마간이라도 살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다음 날 아침, 계약하겠다고 의사를 전달했다. 그로부터 전세계약서 작성, 대출 준비, 심사와 같은 과정들이 파도처럼 나의 안정을 휩쓸어갔다. 


#3

그 사이 나는 대학교 학생상담센터에 취업하게 되었다. 직전의 경력을 살려 운이 좋게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일거리가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덧 9월을 지나 2학기가 시작되었으므로 상담센터에 찾는 학생들이 늘어갔다. 담당하는 사업도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참여자 모집부터 강사 섭외, 홍보물품 제작까지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즐겨하던 글쓰기, 러닝, 산책과 같은 활동을 줄이거나 못하게 되는 데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주요한 무기들을 동시에 빼앗긴 셈이다.


일련의 사고와 과정을 경험하며 불안정할 때 보이는 모습이 나타났다. 가정과 상상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며 조급해했다. 안정적일 때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편이다. 그러나 위험을 인식하는 감각이 과활성화되며 무난한 상황에서도 긴장하며 복잡하게 일을 처리해 갔다.

또한, 확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안에 빠진 내용이나 첨부 문서가 없는지 두세 번 확인하였지만, 임시 저장을 해두고 또다시 수 차례 확인하는 행동이 나타났다. 퇴근할 때면 사무실에 불이 꺼졌는지, 창문이 닫혔는지, 콘센트를 차단했는지 등을 확인했지만 '최최최종'으로 되돌아가서 보아야 안심이 되었다.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나를 탓하는 편이었다. 내가 관여하거나 기여한 부분이 적어도 자책하며 스스로 분발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제는 남 탓이 시작되었다. 전세 계약서를 쓰던 날에 아빠와 같이 부동산에 들렀다. 아빠가 집을 사거나 이사해 본 경험이 있었으므로 도움을 받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아빠는 막상 계약서를 쓰기 시작하자 "네가 살 집이니까 네가 꼼꼼하게 봐"라고 말했다. 아빠의 말이 책임감 없게 느껴져서 즉시 화가 났다. 돌아보면, 아빠의 말이 옳았다. 내가 계약하고 살게 될 집이었으므로 누구보다 내가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했다. 그러나 책임감을 과도하게 가지며 살아온 나였으므로, 아빠의 말은 나를 궁지로 밀어 넣는 듯한 느낌으로 인식되었다. 

나는 여지만 있다면 누군가를 탓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누구는 이래서 불만이고, 누구는 저래서 불만이고'. '이렇게 좀 해줬으면 좋겠고, 저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4

"어! 차 뒤에서 연기가 나는데?"

백미러로 후방을 살피던 나는 시야를 가득 메운, 자욱한 연기에 놀라며 말했다. 부모님이 반응을 보이기 전에 비상 깜빡이를 켜고 자동차를 갓길에 세웠다. 매캐한 냄새가 뒤이어 올라왔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보험사에 전화했다. 현장 조치가 어려울 수 있고, 견인을 도와줄 수는 있으나, 근처에 카센터가 열었을지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배터리 방전 사태로 진땀을 뺀 지 고작 이틀. 자동차가 또다시 말썽을 부렸다.


추석 당일을 맞아 친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모셔져 있는 이천호국원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근처에 고모가 살고 있었으므로 댁에 들러 인사를 하고 돌아오려던 참이었다. 언덕을 오르며 액셀이 조금 세게 밟는다 싶었는데 그로부터 회색 연기가 발생했고, 발견됐다. 백암이라는 지역은 고모가 결혼하며 생활해 온 곳이다. 또한, 고모부가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고모와 고모부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중에는 카센터를 운영하는 분도 있었다.

다행히도 고모가 아는 분을 통해 간단한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내일이 되어야 차량 점검이 가능하므로 하루 지나 방문해 달라고 직원은 말했다. 견인하여 서울로 가는 건 무리일 듯싶었다. 가더라도 영업하는 카센터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견인한 상태로 집으로 가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추석 연휴가 끝나서 다시 견인차를 불러 카센터로 이동해야 했다. 고민 끝에 나는 고모 집에 남아서 하루 자기로 했고, 부모님은 나를 두고(?) 서울로 곧장 올라갔다.  


"아이고.. 결혼했는가?"

얼떨결에 방문하게 된 고모부의 부모님 집.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정리되지 않았고, 오후 2시가 넘어서까지 공복 상태였으므로 어리둥절하기만 했던 내게 한 할머니가 물었다.

"아.. 아니요.."

"그러면 색시가 있는가?"

"아.. 네..."

"아이고, 그러면 됐네. 잘했네..."


내가 무엇을 잘한 건지는 몰랐지만, 잘했다며 오른손을 양손으로 포개어 토닥여 주시니 기분은 좋았다. "아이고.. 연제 쟤는.."으로 이어지던 사촌 동생을 향한 잔소리에 웃음이 절로 나기도 했다. 고모와 연제가 차량을 비상 정차했던 곳으로 와주면서 식사를 아직 못했었으므로 함께 먹었다.  

생과 사의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던 나였다. 고모부의 부모님 댁에 오기 전까지는 '연기가 조금 더 늦게 발견되었더라면', '근처에 갓길이 없었더라면' 생각하며 당시 상황을 반복적으로 떠올렸다. 한편으로 '배터리가 추석 연휴 전에 방전되었더라면 카센터에서 다른 점검도 받아볼 수 있었을 텐데'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은 상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고모부의 친척들에게 둘러 쌓여 환대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서는 걱정도 얼얼하게 마비가 되었던 듯하다. 특히, 육전은 과장을 보태어 '이것을 먹기 위해 내가 여기까지 흘러온 것인가..'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오후 3시부터 저녁밥을 먹기 전까지 자유시간이 생겼다. 그러나 준비된 게 없었다. 이어폰이 없었다. 음악을 달고 살았으므로 고요한 적막이 그저 심심하게 느껴졌다. 세면도구나 여벌 옷도 없었다. 가진 거라곤 휴대폰과 그날 입었던 옷들 뿐이었다. 

추석 전까지만 해도 시간에 쫓기듯 살았다. 집을 알아보고, 전세 계약을 맺고, 대출을 알아보고, 심사를 거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새로운 상담 사례를 꾸준히 받았고, 담당하는 사업이 첫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이사를 앞두고 가전제품을 고르고, 그 외의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씩 장만하고 있었다. 심리상담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중간, 중간에 이수했고, 사람들의 사연에 글로 회신하는 일을 몇 차례 했다.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어 사용해야 했던 내가 시간의 강에서 유유자적 흘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동차 이상으로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찾아왔지만 기습적으로 벌어진 강제 휴식은 심심하게만 느껴졌다.


"이야, 수호가 말을 참 잘해. 외계인처럼 느껴질 정도야"

"하하, 고모부가 사람을 잘 보시네요"


예견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태로 나는 취해있었다. 고모부는 술을 좋아한다. 특히,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고모 집에서 하루 묵기로 정해지면서 고모부와의 술자리를 예견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내가 즐길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게는 익살스러움이라는 장기가 있고, 분위기를 고려하여 적절히 드러낼 수 있는 경험도 쌓였다. 그러나 한 달 남짓한 시간을 돌아보면 우스꽝스럽게 행동할 만한 여유가 없어야 했다. 원래의 나라면 자동차 상태에 관심이 쏠려있어야 했고, 서울로 돌아가지 못해 밀리게 된 일들을 떠올려야 했고, 내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고모부와 술잔을 부딪치지 못했어야 했다.


"이야, 내가 이렇게 재치 있고 재밌는 사람은 처음 보네"

"하하, 제가 좀 귀한 편이죠"


고모부는 연신 와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귀중하게 보관해 두었다던 양주도 두 병 꺼내왔다. 술은 충분히 취했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즐거워서 얼음으로 희석하며 마음으로 마셨다. 세상에는 내 힘으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상황이나 사건, 사고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나는 쉴 새 없이 노출된다. 중요한 건 크고, 작은 자극들이 강가의 자갈처럼 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발바닥에 닿는 자갈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스스로 선택하는 데에 있었다.


'당장에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즐기자. 즐겨보려고 노력하자!'


지나간 순간들을 회상하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이게 내 최선이니까. 더 이상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 나는 불안해했고, 이따금 불안하다. 불안에 또한 민감하다. 자극을 예민하게 포착하며 스스로 불안에 빠트린다. 작은 자극도 쌓이면 해일처럼 느낀다. 생각이 뒤죽박죽 꼬여버리고 일처리가 더뎌진다.

나는 우울해했다. 다가온 적도 없는 대상을 잃을까 봐, 다가온 누군가가 나를 발견 못하고 그대로 지나칠까 봐 두려워했다. 친절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밤마다 숨죽여 쉴 수 있는 포근한 품을 갈망했다. 


그랬다. 불안하고, 우울하고, 밉고, 짜증 나고, 불편하고, 화가 난 감정들이 모두 내 안에 있었다. 나는 평온하고 침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이제 내가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해 살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모나고 어리숙한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로 했다. 스스로 우울해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다만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감정이 찾아오면 고모부가 건넨 술처럼 다정하게 맞이하기로 약속한다. 


약속한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다. 그 한 사람이 또한 이 세상에서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나를 위해 기꺼이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Image by Joe from Pixabay

이전 09화 그래도 곁에 머물러 주어서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