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Oct 25. 2024

그래도 곁에 머물러 주어서 고마워

"고마워요"

같은 부대에서 전역한 이들과의 단톡방에 모처럼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이윽고 눌러보니 수영이 남긴 메시지로부터 대화가 시작되었다.  


"저 결혼해요. 청첩장 모임을 하려는데, 제가 올린 일정 투표에 참여해 주세요"

수영의 메시지와 결혼사진으로부터 전역자들의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오, 축하축하"

"결혼 축하한다!"

"사진 잘 나왔네"


축하의 열띤 열기를 시원하게 바꾸는 메시지도 불쑥 나왔다.


"우와, 수호 애 둘 아빠야? 심지어 아들 둘...?"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원기가 물었다.

"수호형 조카들이잖아. 관심이 없네..."

내가 부재한 틈을 타 동근이 핀잔(?)을 포함하여 그에게 적절히(?) 답장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전역한 시기가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있으므로 친밀한 정도도 자연스레 달랐다. 원기는 나와 군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으므로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이나 쌓은 친밀감 정도는 낮다. 반면에 조카들과 찍은 사진을 단번에 알아보는 동근과는 유대감이 높다. 입대한 시기가 4개월 밖에 차이 나지 않고, 같은 생활관을 썼었으므로 우리는 내적인 갈등도 겪었지만, 정도 그만큼 깊다. 

그 밖에도 내 말을 잘 따라주던 강인이, 웃음을 자처하던 민수처럼 군대에서 쌓은 인연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수영과는 전역한 이후로도 친밀한 관계를 꾸준히 이어갔다. 부대에서 함께 생활한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지만, 수영과 보낸 시간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수영과 처음 만난 건 생활관(군부대에서 10명 내외로 생활하는 공간)에서였다. 당시 나는 상병이었고, 수영은 생활관에 갓 들어온 이등병이었다. 그는 단숨에 생활관 사람들로부터 '똑똑이'라고 불렸는데, 이유는 오직 그가 다니던 대학교 때문이었다. 수영은 누구나 알아주는 명문대에 다니고 있었다. 군대에 입대하는 군인들의 나이는 대부분 20대 초반에 해당한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군대에 오는 비중은 또한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우리는 어려서 사회로부터 학벌의 중요성을 배운다. 언제부턴간 스스로 동기를 갖거나, 갖기 위해 노력하며 학업을 이어간다. 자의든, 타의든 학벌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할수록, 요구하는 자신의 모습이 클수록, 그러나 자신의 실제 학벌은 낮을수록 위축되고 주눅 들기 마련이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던 내가 본 명문대생 수영의 '똑똑이'로 일컬어지는 당당하고 명료한 모습은 그만한 근거가 있어 보였다.


수영은 우리 생활관에서 2주간 지내다가 이사를 갔다. 옆 생활관에 인원 보충이 시급하다는 까닭이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생활관으로 옮겼으니 우리의 거리는 여전히 가까웠다. 수영을 알아가며 그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다. 돌아보면, 수영과 쌓아간 친밀감은 오묘하면서도 신비롭다. 군대에서는 밤 10시 이후부터 생활관 밖으로 움직이는 게 제한된다. 안전 문제가 특히 우려되기 때문이다. 수영과 나는 밤 10시가 지나 막사 입구의 커피 자판기 주변을 배회하다 우연히 만났다. 공중전화 부스가 있는 주변을 느지막이 서성이다 또한 우연히 만났다. 이러한 우연이 한두 번, 그리고 연이어 쌓인 것으로 보아 우리는 삼엄한 경계에도 서로가 좋아할 만한 장소로 의식하지 않고 나아갔는지도 모른다.


부대에서 만난 수영은 주관성이 뚜렷이 드러나는 후배였다. 좋아하는 취향이 분명했고, 그것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는 서태지와 마이클 잭슨, 김광석의 음악을 좋아했다. 이 시기의 나는 상대방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묻고 그와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수영은 구태어 묻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 앨범을 보여주며 자신의 선호를 자연스레 드러냈다. 그의 당당함과 명료함은 자신의 주관성을 존중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 같다고 나는 인식했다.

두 계급 차이에도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그가 좋았다. 수영은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는 나를 또한 좋아해 주었다. 전역한 이후로는 복학한 수영이 틈이 생길 때마다 연락을 주었다. 가까운 지역에 살던 나는 그가 안내하는 식당에서, 카페에서 그의 말을 담아내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수영은 내가 잠재력을 더욱 발휘하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토익 공부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로 나를 초대하여 교내의 치열한 학업 분위기를 보여주며 자극을 주었다. 심리학 관련 책을 추천하며 나를 스스로 이해해 보도록 돕는 등 나를 위해 관심을 크게 쏟았다. 하지만 수영의 기대만큼 나는 성장하지 못했다. 그가 제시하는 자기 계발이나 자기 이해를 필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영과 어울릴 때면 대리만족을 느꼈다. 나는 수영처럼 좋은 대학에 다니지 않았고, 사회적 지휘가 보장되는 과정을 밟고 있지 않았으며, '나'라는 또렷한 색채를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다만 수영이 내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수영과의 인연을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은 갈수록 커졌다. 관계의 중심이 그에게 쏠리다 보니 나는 수영이 하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아내는, 만족감을 느끼도록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에게 잘 들어주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건, 나의 주관성을 억제하고 타인의 주관성을 돋보이게 하는 자세였다.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도, 입안을 강하게 두드려도, 삼켰다. 그가 살고 있거나, 살아갈 삶과는 결이 다르다고 느낄수록 나를 드러내기 두려웠다. 내가 그와의 대화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맞장구를 치며, 다음에 어떤 말을 이어갈지 궁리하는 일이 전부였다.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수영은 나를 위하고, 열등감의 뿌리를 들킬까 겁내던 나는 누구도 위하지 못한 채로.


"형, 잘 지냈죠?"

미리 썬 스테이크를 접시에 덜어주며 수영은 물었다.

"어, 그럼. 잘 지냈지~"

살짝 뜬 목소리를 냈을 긴장한 나는, 관계 매뉴얼에 등록되어 있는 '나 괜찮아' 모드를 활성화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데요?"

보다 구체적인 질문에 나는 강원도 생활을 회상하며 대답했다.

"최근에 강원도로 한 달 살기를 다녀왔는데..."


키보드 자판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을 나의 목소리로 수영은 알아차렸을 테다. 내가 불편감을 느끼고 있다고. 청첩장을 받으러 나온 동근과 결혼을 앞둔 수영을 오랜만에 보는 순간이라 긴장이 절로 되었다. 특히, 수영에게 내가 그와 어울릴 만한 이유를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가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내가 나 스스로 그와 견주어 나를 낮추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회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명성을 쌓았다고 생각할수록, 그의 관점으로 비추어 본 나는 부족함이 뚜렷한, 실패한 인생에 가까웠다.


Image by StockSnap from Pixabay


강원도에서 한 달을 생활하며 밤하늘의 별이 선명하게 보이던 날에 진우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강박적인 경향에 대해 나누다가 '통제'라는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개인의 힘으로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진우는 말했다. 우리가 관여하든, 관여하지 않든 상황은 끊임없이 일어나며, 우리가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사람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지만, 에너지를 포함하여 개인이 해낼 수 있는 현실의 한계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직과 퇴사를 반복해서 고민이라는 내게 진우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수호야, 우리가 뭐 어쩌겠어. 이렇게 태어나고, 이렇게 생겨먹었는 걸"


진우와의 대화로부터 나의 한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더 이상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계발하지 않아도 나는 여기에서 그런대로 괜찮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열등감이 있고, 사랑을 원하고, 예민한 성격이지만, 이러한 특성은 또한 나를 설명하고 이루는 근간이다. 벗어나려고 애쓰기보다, 싫다고 발버둥 치기보다, 내가 먼저 아끼고, 보듬고, 알아주고, 반겨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에이씨, 아무렴 어때. 이렇게 태어난 걸, 뭐 어쩌겠어'


수영과 동근을 두고 절절매던 나는 그때의 마음을 상기했다. '그래, 이들은 내가 괜찮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증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알아차림은 찰나와 같다. 그 순간은 하지만 삶의 전부이다. 내리 깔리던 눈이 그들과 수평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나의 동작과 반응을 점차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주관적인 태도에 대한 선망과 저변을 표류하던 '부족하다는 느끼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편안함이 마음으로부터 온몸으로 서서히 퍼져갔다. 


진우와의 한 번의 통화가 열등감과 수치심을 보듬도록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의 아파트에 보드게임을 하러 다녀온 경험에서, 잘 먹고 잘 자는 일만큼 삶에서 중요한 일이 없겠다고 느꼈던 순간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안정감을 추구하는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깨닫던 순간에서, 혹은 그 외의 특정한 경험과 그것을 고찰하는 강원도에서의 시간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형이 오늘 감을 잘 못 잡으시네~"

수영과 동근의 대화로부터 느낀 바를 말하자 수영은 대답했다. 대화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뉘앙스였다. 나보다 우월한 대상이라 인식하던 수영의 핀잔과 같은 언어는 내게 상처로 남았어야 했다. 과거의 나라면 민망함으로 시작하여 분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숨을 고르며 그의 눈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편안한 웃음을 내보이며 특유의 말투를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하하, 그랬나?"

식사를 마치고 이동한 카페에서 몸의 긴장이 풀린 걸 느꼈다. 상체가 그들 쪽으로 가까이 향했고, 발바닥은 땅에 가볍게 닿아서 어떠한 인의적인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부족한 나'라는 만연하고 자동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수영을 그대로 바라보니 형으로 나를 좋아해 주는, 한없이 소중한 동생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이전 08화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저변의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