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 조짐의 조짐이 보이는데요..?

by 두근거림

현재의 나를 사회적으로 정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에 전세로 혼자 살고 있는, 결혼하지 않은,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서른아홉 남성"


실수령액이 250만 원을 넘지 못한다. 근무 기간이 1년도 남지 않았다. 기간이 만료되면 이직해야 한다. 매달 지출해야 하는 고정 비용이 있다. 전세 대출 이자도 포함된다. 대학원을 다니겠다며 학비를 들였다. 직업을 중간에 한 번 바꾸긴 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도 넘었다.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던 어린 시절만 해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회사에 취직할 때만 해도 이처럼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살 줄 몰랐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0~39세 중위소득은 338만 원이다. 나이가 들수록 빈부 격차가 커지는 걸 실감한다. 한 친구의 직급은 과장이고, 누구는 팀장이다. 어떤 친구는 연봉으로 5,000만 원을, 누구는 1억에 가까운 돈을 번다. 나는 한시계약직으로 연봉은 그들보다 턱없이 모자라다. 돈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최소한의 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범위는 어느 정도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가정마다 차를 한 대씩 가지고 있는 문화가 보편적이라면 차를 가지지 못했을 때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만약, 차종으로 소나타가 흔하다면 비슷한 조건의 차를 소유하고 있을 때 만족할 수 있다. 반면, 사람들이 소나타를 주로 타고 다니지만, K9이 갖고 싶고, 소유할 능력이 안 될 경우 자신의 소득이나 여건에 만족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요즘 상황은 예시와 다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물가도 끊임없이 오르고 있다. 가만히 놔두어도 값어치가 오르는 서울 주요 지역의 아파트를 대부분 선망한다. 우리는 자신의 위치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자신이 소유한 물건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며 살아간다. 우리가 상상하는 행복한 삶은 높고 많은 조건을 필요로 한다.


나는 상담심리사로 일하고 있다. 공신력 있는 민간 학회의 2급 자격증을 취득하여 활동하고 있다. 근무하는 환경이나 개인의 역량에 따라 버는 소득에 차이가 당연히 있다. 다만, 나와 비슷한 수준의 자격과 경력을 갖춘 주변 사람들을 보면 하나 같이 급여가 낮다.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상담사로 일한다고 밝히면 돈을 많이 벌거나 전망이 좋을 거라고 사람들은 예상한다. 모두 틀렸다. 이제 막 심리상담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의 급여는 낮고, 인지도가 높거나 능력을 인정받은 선배들의 수는 많으며, 매년 새로운 상담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고정적인 소득이 있으므로 당장에 사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작은 평수라도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사고 싶다는 게 내가 느끼는 갈증의 이유일 것이다. 나는 주택 꼭대기에 살고 있다.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춥다. 웃풍이 심해 후리스라도 입지 않으면 집안에서 생활하기 어렵다. 실내화는 필수다. 난방이 잘 되고, 엘리베이터가 있고, 분리수거가 쉽고, 사두면 적어도 떨어질 걱정은 없는 아파트에 살고 싶다. 가능하다면 비싸고, 크고, 넓은 아파트가 물론 좋다. 그러나, 겨울 난방료에 지레 겁을 먹으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등으로 콧물을 훔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내가 요즘 자주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 순자엄마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조리한 닭백숙을 땅바닥에 흘리며 "에헤이, 조졌네~ 이거!" 말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순자엄마님의 표정과 억양이 유독 기억에 남았고, 나는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할 때면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 조짐의 조짐이 보이는데요..?"


sunset-glow-3498321_1920.jpg Image by mickyhz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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