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흔을 앞둔 나는 이대로 괜찮을까

by 두근거림

나는 소년일 때처럼 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수용받는 느낌을 원한다. 이는 서른아홉이 되도록 어김없이 흐르는 콧물과 같다. 콧물이 흐를 만큼 추운 상태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나에게는 코흘리개 같은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내년이면 마흔 살이 된다. 마흔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논어 위정 편에서 마흔의 나이를 불혹으로 표현하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역사, 배경 등 현재의 자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이해해 가는 게 필요하다. 두 번째로 외부 환경에 대해 이해해 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부 환경의 영역을 넓게 펼치면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관계 등으로 볼 수 있으며,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배워가는 게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은 필수적이다. '나'라는 유일한 대상을 이해하는 과정과 환경에 대해 배워가는 과정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나에 의해서 고통받았다. 감정은 억압했고, 경험은 회피했다. 억압과 회피로 파인 내면의 동굴을 인식하고 스스로 물어가며 받아들이는 데도 십 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동굴 탐방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가끔은 어디서 기인한 지도 모르는 감정,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 무심코 저지른 행동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불혹에 벌써 가까워졌다. 단단하게 뿌리내린 '나'라는 기반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대처하는 모습과는 결이 다르다.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내가 외부 환경이라는 거대한 흑막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나는 언제까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생각하며, 겪어나가는 과정을 두려워하며, 선택을 후회하며, 그간의 나를 못마땅해하며 살아가야 할까.


내가 원하지도, 타인이 요구하지도 않은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멈추지 않고,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을 지속해야 한다. 나의 청년기가 저물어가고 있다. 중년의 세대로 접어드는 순간을 앞두고 있다. 불안에 떨면서도 기어코 나아가던 조촐한 삶이 반환점을 돌기 시작한다. 흔들리면서도 물결을 거부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소년의 얼굴에 팔자 주름이 내려앉았다.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괜찮지 않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 할 수는 있을까.


tree-569275_1920.jpg Image by DaveMeier from Pixabay .


keyword
작가의 이전글1. 나에게 필요했던 건, 안전기지 하나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