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빠와 결혼과 나_2

by 두근거림

아빠의 사랑은 줄곧 '지켜보기'로 표현된 것 같다. 어려서 차도에서 뛰어노는, 아빠의 기준으로 위험한 행동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나의 성장과 적응에 관한 어떠한 말도 먼저 꺼내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 갖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들어주려고 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 게임기를 사달라고 졸라 부모님과 백화점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높고, 넓고, 북적였다. 그때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가 새로 발매되었었고, 게임 팩의 가격이 구만구천구백 원이라고 점원은 말했다. 곤란해하는 부모님의 표정, 설득하던 목소리,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던 순간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아빠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한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있을 때가 많았다. 아빠는 시장에서 파는 치킨을 자주 사 왔다. 튀김이 얇은 게 특징인 시장표 치킨을 나는 좋아했다. 백화점에서 구경만 하고 돌아왔던 날로부터 몇 해 뒤, 아빠가 게임기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스트리트파이터 팩도 함께였다.


수호야, 게임기 사 왔다.


아파트 현관 앞에 선 아빠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나는 아빠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향해 '깡충깡충' 뛰어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게임기가 새로 생겼다. 또래들 사이에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친구들 중, CD를 넣고 게임기를 켜는 유일한 초등학생이었다. 집에 플레이스테이션이 있다고 교실에서 자랑하고 다녔다. 부모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수많은 친구가 우리 집을 다녀갔다. 그 밖에도 외식 메뉴로는 돼지갈비, 배달 음식은 자장면, 생일 선물은 게임 CD로 나의 취향과 선호가 아빠의 선택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아빠와 손을 잡고 등교하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나는, 아빠에게 같이 등교하기 부끄럽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중학생으로 성장했다.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났다. 과장으로 근무하던 아빠는 퇴직금조차 받지 못할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집안에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생활 전반으로 퍼져갔다.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하는 엄마, 아빠가 있었다. 더 이상 가족오락관을 함께 보지 않았다. 결국 명예퇴직으로 인정받았던 아빠는 퇴직금으로 창업을 시도하게 되었다.


아빠가 일산에 감자탕 가게를 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식당을 운영하기 위해 주부로 생활하던 엄마도 손을 보탰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캄캄한 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고등학생이던 누나는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밤이 깊어 퇴근했다. 나는 하교할 때마다 아침부터 낮 사이 온기가 사라진 거실의 불을 켜고, 젤리처럼 굳은 감자탕을 데워먹었다. 소시지 반찬과 식탁에서 만나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치킨과 돼지갈비, 자장면도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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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내가 받은 시험 점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학교 성적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받은 숙제가 있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공부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지루하고, 따분했으므로 어려서는 친구들과 뛰어놀거나 게임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중학생 때부터는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며 혼자 하는 활동에 몰두했다. 친구 관계도 좋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1학기 때까지 놀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반응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뭔가를 물어도,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도 켜켜이 쌓여가던 말들을 도무지 전달할 수 없었다.


말을 못 할수록 반에서 고립되었다.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 자는 척했다. 백일장에 가거나 수련회에 가는 일은 고역에 가까웠다. 급식을 먹는 과정도 고통스러웠다. 점심시간마다 급식실 앞에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는데 반 친구가 없던 나한테는 무리 지어 떠드는 또래들 사이에서 위축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시기를 거치며 나의 내면에는 '내가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빠대로 손님의 발길이 뜸한 식당을 두고 존폐를 고민하고 있었으니 우리의 교류가 단절되는 건 이상한 수순이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소외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학교 성적이나 대학교 진학, 장래희망보다는 친구들에게 속하는 일이 중요했다. 등교했던 첫날부터 누구와 친해질 수 있을지 살폈다. 어울리기 위해 스타크래프트를 깔았다. 우연히 들은 가벼운 말이라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싫어할 것 같은 말은 삼켰다. 좋아할 거라고 예상하는 말로 나를 가장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아빠는 두 번째 창업을 시도했다. 동대문 일대에서 야간에 장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피자를 파는 가게를 인수받았다. 엄마는 또한 손을 더했다. 아빠는 식당에서 숙박을 하고, 엄마가 밤늦게 돌아왔다가 아침에 출근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동태찌개가 얼큰하니 맛있다며 떠먹는 아빠의 모습이 사라졌다. 냉장고에 한 병씩 채워져 있던 소주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 사이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군대를 다녀왔으며, 두 곳의 회사에 입사했다가 퇴사했다. 아빠는 피자 가게를 그만두고, 지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찜질방 매점을 운영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여러 일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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