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손글씨
몇 년 전쯤일까?
사진으로 남겨둔 엄마의 반찬과 손글씨.....
엄마는 7개월 전부터 집안일에 자신이 없어하시기 시작했다.
반찬을 만드느라 잠시라도 서서 움직이기라도 하면 다음날은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야 할 정도로 피곤을 느끼기도 하셨다.
사실 엄마는 젊어서부터도 몸이 약해 자주 누워서 지내야 하셨다.
외가댁에서 몸조리를 하시곤 해서 내 동생들과 나는 그런 엄마를 자주 보면서 자랐다.
이젠
나이가 점점 들어가시고 어느 순간 더 쇠약해지기 시작하셨다.
신체적으로는 몸상태가 안 좋고 여기저기 아프기도 하고 어지러움이 동반되니 평소 만나던 친구도 만나러 나가야 하지만 여러 이유로 외출이 어려워지셨다.
그러는 동안 점점
정신적으로도 무기력하고 자존감 마저 떨어지기도 했다.
거의 6년 정도 경도 인지 장애가 있어 신경과 약을 드시고 계셨다.
처음에는 냉장고 안에 음식물 재료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구석구석 찾고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여닫기를 반복하셨다.
허약하신 엄마걱정에 종종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엄마, 반찬거리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음... 글쎄.... 다 있어, 신경 쓰지 말어. 고맙다."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냉장고에
같은 재료가 있는 데 있는 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서 중복되게 구매를 하셨다고 했다.
혹은 실제로는 없는 데 있다고 생각해서 제때 준비를 못해 필요할 때 난감해하기도 하셨다.
그렇게 지내던 중
인지의 저하가 부쩍 느껴져서 인지기능 검사를 했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동안에 엄마는 종종 우울해하셨고
"내가 바보가 되었나 봐. 네가 보기에도 정말 내가 이상하니?"라고 확인하듯 질문을 하셨다.
그러면서도 "나 치매 아니야, 검사하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바보스럽고 창피해, 그러니 검사는 하기 싫구나." 하셨다.
점차 기억의 혼돈이 잦아지면 불편하니까 검사를 안 한 지 오래되었으니 하시자고 설득했던 상황이었다.
설마 우리 엄마가 치매 시겠어? 하면서도 덜컥 겁이 나고 불안했다.
아이 어르듯이 겨우 설득을 하여 검사를 하기로 했다.
막연히 괜찮으실 거라고 나 스스로 위안했다.
아버지도 엄마가 그 정도로는 검사는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하셨고
엄마도 싫다고 하시는데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리는 것 같아 망설였다.
그러나 더 이상은 시기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도 인지 장애로 그동안 약도 꾸준히 드시고 있는 중이었다.
인지검사를 해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작년 12월에 치매 초기로 진단이 내려졌다.
이후 아버지가 거의 대부분의 집안일을 하시게 되었고 엄마가 알려주시는 방법대로 찌개며 반찬을 만드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하시던 집안의 일은 거의 아버지에게 일임이 되어갔다.
지금은 어느 시장에 가야 품질이 좋고도 가격이 저렴한지 파악하실 정도까지 되셨다.
엄마가 드시고 싶어 하는 것도 사다 드리고 정성을 기울이셨다.
나는 퇴직 전까지
내가 딸이라고 해도 직장생활에 바쁘고
부모님 댁과 내가 사는 집은 거리가 멀어 직접 찾아뵙는 횟수는 적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라고 생각해서 안심을 하고 지냈다.
엄마는 15년 전부터 당뇨도 있으셔서 세 달에 한번 먹는 약도 처방받고 인슐린도 자가 주사도 하셨다.
딸이 바쁘다고 반찬도 제대로 못해 먹을 거라 생각을 하셨는지
하루는 반찬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 집을 오셨다.
어떤 것은 손수 메모를 하여 붙여 반찬 이름을 붙여서 가지고 오셨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둔해서 글씨는 흔들렸지만 알아볼 만큼 정확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만든 반찬을 가져다 드리러 간다.
부모님도 뵙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지만.
이젠 부모님 댁에 가면 아버지가 끓이신 김치찌개를 싸주신다.
"엄마가 만든 거 너 좋아하지?
이젠 내가 끓이지.
엄마가 만든 거랑 맛이 거의 비슷하지?"
맘이 뭉클해진다.
엄마의 맛이 그리워지면 생각나는 김치찌개
그걸 받아온다.
요즘 집안 살림은 하지는 않으시지만
가끔 시금치 반찬이 있으면 그때마다 엄마는 김밥을 만드신다.
그건 확실히 기억하시고 계셔서 무슨 재료가 들어 가는지 아신다고 한다.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기분의 변화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전화로 안부를 확인할 때면 나는 긴장하고 신경을 쓴다.
음성으로 엄마의 상태를 짐작하는 것이다.
내가 묻는 질문에 뭔가 생각이 나지 않거나 자신이 없어지면 바로 수화기는 아버지께로 전해진다.
엄마는 대답을 하지 못하니 불안해지는 심리로 자존감도 떨어지심을 느낄 때가 있다.
오늘은 일상적인 편한 대화가 오가게 되니 음성은 밝고 힘이 있어 보이셨다.
내 맘도 편안해진다.
엄마의 마음이 힘들면 나도 따라 아프다.
그래도 지금 엄마는 내 옆에 계시니 감사하다.
엄마의 손글씨가 적힌 메모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