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 트랙 2
1집: 올드스쿨, 힙합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을까?
08. (보너스 트랙 2) 아프로-아메리칸
아프리카 밤바타의 '줄루 네이션'은 현재에도 'Universal Zulu Nation(유니버설 줄루 네이션)'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며, 이름처럼 여러 국가에 단체를 형성하고 있다. 항간에는 밤바타가 영화 <Zulu>(1964)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일종의 썰이 있는데, 혹시나 그런 이유로 어떤 식의 '힙합 정신'을 기대하며 영화를 다운로드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적어도 2020년의 한국인이 그런 걸 느끼는 것은 매우 힘들어 보인다. 일단은 아주 유명한 전쟁영화다.
영화 <Zulu>는 1879년 영국이 제국주의 침략의 일환으로 남아프리카의 '줄루 왕국'을 침략했던 줄루 전쟁의 한 장면을 그린다. 줄루 전쟁에서도 영국군이 300 대 4,000이라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따낸 '로크스 드리프트 전투'를 다뤘다. 이 영화는 철저히 영국군의 시선에서 그려지기 때문에, 줄루 왕국의 군대는 무자비한 야만인, 영국군은 용맹한 기사라는 분위기가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의 잔인함으로 고통받는 군인의 현실과, 용맹한 영국군에게 경의를 표하는 줄루 군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때문에 당대에는 반제국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세대의 시선에서는 여전히 제국주의적인 느낌이 강하다.
밤바타가 실제로 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그 원천은 아마도 용맹한 영국군이 아니라 영국군보다 더 용맹했던 줄루 왕국의 군대였을 것이다. 이는 힙합이 '아프로-아메리칸'의 문화라는 점과 통하는 부분이다. 많은 평론가들이 미국 힙합을 이해할 때 먼저 그 바탕에 '아프로-아메리칸'을 두기를 강조한다. 아프로-아메리칸은 쉽게 말해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을 뜻한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백인의 노예로서 차별과 박해를 받아온 인종이며, 그 때문에 이들의 문화에는 그러한 차별의 결과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는 힙합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힙합이 저항정신에서 나온 음악이라고 한다면, 이는 틀린 말이다. 이런 식의 생각은 힙합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힙합은 철저히 파티 음악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저항정신을 통해 비로소 아프로-아메리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대변하게 됐다는 점에서, 힙합에서 저항정신은 빼놓을 수 없는 가치임이 분명하다. <The Message>의 등장과 이후 의식적인 힙합의 발전은 힙합을 다채롭게 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동시에 아프로-아메리칸이라는 역사적 토대가 힙합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낸 원인이기도 했는데, 다음의 일화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