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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eek Nov 01. 2020

뉴욕 대정전

보너스 트랙 3

1집: 올드스쿨, 힙합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을까?

09. (보너스 트랙 3) 뉴욕 대정전


조금 현실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70년대 말은 수많은 힙합 그룹들이 경쟁을 벌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기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턴테이블, 믹서 등 고가의 장비가 필수였다. 빈민가의 거리에서 이런 것들이 어떻게 흔할 수 있었을까?


일단은 가볍게 들어주기 바란다. 70년대 뉴욕에는 아주 우연적이고, 사실은 범죄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잘 포장된, 힙합에는 천금 같았던 해프닝이 있었다. 1977년 7월 13일, 뉴욕을 갑작스러운 어둠에 빠트린 '뉴욕 대정전'이다. 13일 오후 8시 반, 뉴욕에 전기를 공급하는 콘 에디슨(Consolidated Edison) 사의 웨스트체스터 발전소에 낙뢰가 떨어졌다. 발전소 측에서는 피해를 복구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뒤로 1시간 동안 몇 번의 낙뢰가 추가로 떨어지면서 발전소가 완전히 멈췄다. 오후 9시 반, 뉴욕은 거의 완전한 암흑에 갇히게 됐다. 5개 자치구 중 퀸스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전기가 끊긴 것이다.


전기가 사라진 도시는 무법지대가 됐다. 뉴욕 곳곳에서 약탈과 폭동, 방화가 일어났다. 기록에 의하면 1,600개가 넘는 상점이 약탈을 당했고,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단 하루 만에 범죄로 인한 피해액이 3억 달러(약 3,600억 원)에 달했다. 당시 뉴스를 보면, 훔친 물건들을 박스 채로 어깨에 올리고 대낮에 대로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심지어 당당히 인터뷰를 하며 부끄럽지 않고 또 할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이렇게 과격한 결과가 나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70년대는 세계대전 이후 줄곧 이어져 왔던 경제 호황의 후폭풍이 찾아온 시기다.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로 유가가 상승하면서 경기는 침체되는데 물가는 계속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당연히 서민층이었고, 대정전은 이러한 불만을 폭발시키는 기폭제인 한편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던 것이다.


브롱크스의 흑인들도 이 대혼란의 흐름에 스리슬쩍 올라탔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더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는데, 정책으로부터 버려진 게토이기 때문에 법을 지킬 이유가 더더욱 없다는 것. 대정전의 다음날 아침, 거리에 모인 브롱크스의 흑인들은 너도나도 장비를 하나씩 끼고 있었다. 모두가 그 출처를 짐작했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날 이후 소수의 DJ들에게만 허락됐던 턴테이블과 믹서가 동네에 널리게 됐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날을 '크리스마스 같았다'고 회상한다.


옛날 옛적 웃픈 이야기 정도로 넘어갈 만한 해프닝일지 모르나, 이런 일이 한 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멀리 볼 필요 없이, 2020년 현재에도 일어났다. 흑인 인권을 외치는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한편에서, 동시에 무차별적으로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 폭력이 전개됐다. 계기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같다고는 볼 수 없지만, 흑인 사회로 한정해서 본다면 인종차별이라는 바탕이 과격한 행동을 부추겼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안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조금 진지를 먹자면 이런 물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힙합의 탄생은 범죄에 빚을 지고 있는가?" 실상 이런 부분이 힙합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힙합은 범죄와 관련이 있다', '힙합은 범죄를 미화한다' 반면에 당신이 힙합 팬이라면 이렇게 말할 거다. '힙합은 범죄를 추구하지 않는다' 둘 중 누구의 말이 옳을까? 불편한 사실이지만, 전자가 틀렸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같던 이날을 기점으로 많은 힙합 그룹이 탄생했고 이 일은 미화됐다. 또한 현재의 일부 유명 뮤지션들은 갱단 출신이기도 하며, 어떤 뮤지션들은 여러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고, 또 어떤 뮤지션들은 (합법이지만 보통 마약으로 분류되는) 대마초 회사를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힙합이 범죄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두 가지 말이 동시에 옳을 수 있는 이유는 '힙합이 범죄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범죄와 가까운 곳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든 불법행위는 처벌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에, 흑인의 범죄가 미화된 사례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반대의 범죄가 당대의 흑인들에게 덮쳤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정전의 약탈이 웃픈 이야기로 잘 포장됐듯이,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흑인을 백인 사회에서 분리시키는 정책이 백여 년간 유지됐던 역사가 자유국가로 멋지게 포장되어 왔다.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데 왜 법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다소 과격한 목소리는 아프로-아메리칸이라는 특수성에 비춰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적 토대야말로 힙합이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이 이야기는 후에 소위 말하는 '갱스터 랩(gangsta rap)'의 발생으로 이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3집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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