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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eek Nov 01. 2020

문화의 아이콘

Run-D.M.C.

2집: 뉴스쿨, 황금기의 시작

11. 문화의 아이콘


PEACEMINUSONE X NIKE Air Force 1 'Para-Noise' 화보


2019년의 가장 핫한 광고를 꼽으라면 이걸 빼놓을 수 없다. 나이키와 지드래곤의 에어포스 1 '파라-노이즈' 모델. 나이키가 국내 뮤지션과 협업 제품을 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크게 이슈가 됐다. 경매 사이트에서는 한때 가격이 20배가 넘게 뛰며 그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성공한 힙합 뮤지션과 유명 스포츠 웨어 브랜드의 협업은 별로 낯선 조합이 아니다. 카녜 웨스트와 손을 잡았던 아디다스의 '이지 부스트'는 세계적인 유행을 타며 수년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힙합 뮤지션이고, 또 왜 하필 스포츠 웨어 브랜드일까? 물론 답은 이 트랙의 주인인 Run-DMC에게 있다.


다시 8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자. 당시 올드스쿨 힙합에는 두 개의 얼굴이 공존했다. 거리의 흑인들로부터 나온 거칠고 투박한 힙합임에도,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의 주류 문화, 또는 기존의 성공한 음악과 영향을 주고받아야 했다. 이는 힙합이 '파티 음악'에 국한됐던 것과도 연관이 있다. '지금 클럽에서 유행할 수 있는 스타일'이어야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한 힙합 음악은 디스코나 펑크 사운드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아프리카 밤바타가 일렉트로라는 새로운 사운드를 도입했던 것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일렉트로는 힙합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에 성공하며 유행을 타긴 했지만, 그것이 힙합 고유의 것은 아니었다. 힙합 자체만으로 성공한다는 것, 다시 말해 '힙합의 오리지널리티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Def Jam Recordings(데프 잼 레코딩스)'의 공동 설립자인 'Russell Simmons(러셀 시몬스)'였다.


러셀은 유능한 제작자로서, 'Kurtis Blow(커티스 블로우)'를 발굴한 장본인이다. 커티스 블로우는 싱글 <Christmas Rappin'> (1979)으로 유명세를 타고, 그의 첫 앨범 <<Kurtis Blow>>(1980)가 성공하며 최초의 솔로 랩 스타가 된 인물이다. 특히 <<Kurtis Blow>>의 수록곡 <The Breaks>는 펑크 사운드 위에 '브레이크'라는 단어로 수십 가지 라임을 선보인 곡으로, 올드스쿨 힙합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러셀은 커티스의 스타일보다 더 '힙합스러운' 것을 원했다. 펑크나 디스코보다 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진짜 거리의 사운드'를 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동생 'Joseph Simmons(조셉 시몬스)'와 동생의 친구 'Darryl McDaniels(대릴 맥대니얼스)', 그리고 'DJ Jam Master Jay(잼 마스터 제이)'를 영입해 Run-DMC를 결성했다.


Run-D.M.C. (왼쪽부터 조셉 시몬스, 잼 마스터 제이, 대릴 맥대니얼스)


1983년 싱글로 발매되고, 1984년 첫 스튜디오 앨범 <<RUN-D.M.C.>>에 수록된 이들의 <Sucker M.C.'s>는 '거리의 힙합'을 그대로 보여주며 힙합 시장의 판도를 뒤바꿨다. 다른 어떤 악기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드럼 머신의 사운드'만을 사용한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비트와 거침없는 래핑은 게토의 흑인들이 거리에서 라임을 뱉는 방식과 닮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기존의 힙합 스타들이 입었던 화려하고 비싼 의상들을 버리고, 당시 거리의 패션이었던 아디다스 저지와 캉골 모자를 택했다. 자신과 닮은 복장을 하고 자신과 비슷한 랩을 뱉는 스타의 탄생은 가히 파괴적이었다. 이들의 성공은 연일 화려한 의상으로 경쟁하던 기존 스타들에게 한 방 먹인 꼴이 됐다. 진정한 '스트리트 문화'의 탄생인 것이다. 


러셀은 이 이미지를 통해 Run-DMC를 힙합 시장에서 대체 불가의 아이콘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힙합 팬들이 아디다스에 열광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아예 <My Adidas>라는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은 그들을 정상에 올려다 준 3집 앨범 <<Rasing Hell>>(1986)에 수록되며 큰 인기를 끌었고, 마침내 아디다스와 광고 계약을 하기에 이른다. 이는 스포츠 스타가 아닌 사람이 스포츠 웨어 브랜드와 계약한 최초의 사례가 됐다. (그리고 이들은 계약한 그 모델의 이름처럼 '슈퍼스타'가 됐다)


Adidas 'Superstar' (Run-D.M.C. 15주년 기념 모델)


결과적으로 지금의 '힙합'하면 떠오르는 기본적인 이미지는 이들에게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뉴스쿨은 다양한 가능성의 시도로 정의되지만, 사실 이들은 무언가를 새로 개발하지는 않았다. 랩을 하는 방식, 곡을 구성하는 방식, 무대에서 돋보이는 방식을 거리에서 가져왔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시도였고 이를 이후 모든 힙합의 표준으로 만들었다. 이런 변화가 잘 실감나지 않는다면, 이전의 힙합과 <Sucker M.C.'s>를 번갈아 들어보기 바란다. 독특한 음색 하나 없는 이 곡이 지금의 힙합과 훨씬 더 가깝게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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