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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eek Nov 01. 2020

Fight The Power!

Public Enemy

2집: 뉴스쿨, 황금기의 시작

13. Fight The Power!


<The Message>가 의식적인 힙합의 길을 연 뒤로, 힙합 뮤지션들은 자신의 곡에 크든 작든 흑인 사회의 어두운 모습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당대의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뉴스쿨이 새롭게 도입했던 여러 시도들 중 가장 뚜렷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됐다. 그런데 이 의식적인 힙합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한쪽에서는 범죄로부터 벗어나 차별과 싸우자고 외친 반면, 한쪽에서는 버려진 범죄의 도시를 그들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다. 전자는 '힙합의 CNN'이라 불린 'Public Enemy(퍼블릭 에너미)', 후자는 웨스트 코스트에서 시작된 '갱스터 랩'의 시류다. 우선 앞의 경우를 살펴보자.


퍼블릭 에너미의 핵심인 'Chuck D(척 D)'는 대학에서 'Flavor Flav(플레이버 플레이브)'를 만나면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척 D는 원래 학내 유명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며 라디오 힙합 DJ를 꿈꿨는데, 당시 플레이버 플레이브와 함께 만들었던 데모 테이프가 우연히 알려지면서 데프 잼에 발탁되게 된다. 이 데모 테이프의 이름이 바로 <Public Enemy No. 1>이었다. 이 곡은 후에 1987년 이들이 퍼블릭 에너미로 데뷔한 첫 스튜디오 앨범 <<Yo! Bum Rush The Show>>에 수록됐다.


척 D는 퍼블릭 에너미로서 자신의 힙합이 세상에 어떠한 메시지를 남기길 바랐다. 이들의 음악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흑인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공공의 적이 되겠다고 선언한 음악이었다. 그래서 '공공의 적'이라는 이름은 중의적으로 읽히는데, 하나는 실제로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던 흑인의 현실을 뜻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흑인을 대변해 공권력에 대항하는 퍼블릭 에너미 스스로를 칭하기도 한다.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은 퍼블릭 에너미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난 명반으로 꼽힌다. 수록곡 <Bring The Noise>가 대표적이다. 'Noise'는 여기서 자신들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로, '시끄러운 음악'에 담긴 '정치적인 메시지'를 뜻한다. 힙합은 파티에서나 트는 정신없는 소음 취급을 받지만, 이들은 여기에 또 다른 소음, 사람들이 알기를 꺼려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 '더 시끄럽게 울려야만 하는 소음'으로 탈바꿈한 것이다.1)


퍼블릭 에너미는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저항정신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의식적인 힙합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사회를 향한 이들의 대결의식은 3집 <<Fear Of A Black Planet>>의 수록곡 <Fight The Power>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나 다소 논란을 일으켰던 다음의 가사!


Elvis was a hero to most, but he never meant shit to me you see
(엘비스는 대다수에게 영웅이었지만,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어)
Straight up racist that sucker was
(정말로 그놈은 인종차별주의자였지)
Simple and plain, mother fuck him and John Wayne
(단순하고 싱거운 놈, 존 웨인이랑 같이 엿이나 먹어)


엘비스는 '로큰롤(rock and roll)의 황제'로 불리는 그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맞다. 그는 백인의 신분으로 흑인들의 비주류 음악이었던 로큰롤을 미국의 주류 문화로 만든 최초의 록스타였다. 때문에 인종을 넘나드는 그의 문화적 영향력은 대중음악계의 올타임 레전드로 꼽히곤 한다. 그런 레전드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못 박은 데다가 엿까지 먹인 것이다!


<<Fear Of A Black Planet>>

후에 한 인터뷰에서 척 D는 엘비스 라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엘비스는 인종을 막론하고 존경받는 뮤지션이지만, 엘비스를 로큰롤 스타로 받아들였던 미국 문화는 여전히 인종차별적이었다는 것.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는 최고의 로큰롤 스타가 된 반면, 그의 음악을 듣는 백인들은 여전히 로큰롤을 탄생시킨 흑인의 문화에는 무관심했다. 척 D에겐 엘비스와 로큰롤의 성공이 흑인 문화의 성공이 아니라는 점에서 'never meant shit'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힙합의 성공은 온전히 흑인이 주도하는 흑인 문화로서의 성공이었다.


'Fight The Power(권력에 맞서 싸워)!'라고 외친 퍼블릭 에너미는 그 대결의식을 바탕으로 흑인 사회가 단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들은 흑인에 대한 공권력의 부당한 처우, 흑인을 배제시키는 대통령의 정책, 흑인을 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공공서비스 등을 비판하는 한편, 흑인 사회를 덮친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서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찬란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는데, 그러기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깊었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곪다가 이내 터지기 마련이다. 힙합에서는 그 폭발이 새로운 시류의 등장을 알리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특이한 것은 그 장소가 힙합의 고향인 동부가 아니라 반대편, 웨스트 코스트였다는 점이다.




1) 이 앨범은 또한 여러 곡들을 잘게 쪼개 재조합하는 섬세한 작업을 통해 '샘플링의 미학'을 보여준 명반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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