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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eek Nov 01. 2020

랩의 패러다임

Rakim

2집: 뉴스쿨, 황금기의 시작

12. 랩의 패러다임


Run-DMC는 힙합의 황금기에 화려하게 타오를 거대한 불씨를 남겼다. 그리고 연이어 등장한 뉴스쿨의 신예들이 각기 다른 형태의 장작을 불꽃에 던져 넣었는데, 그중에서도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인물이 있다. 흔히 올드스쿨 힙합을 다른 차원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 몇 안 되는 뮤지션 중 하나, '플로우(flow)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Rakim(라킴)'이다.


플로우는 아마도 힙합을 즐겨 듣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용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한 마디로 정의하기엔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랩에서 느껴지는 종합적인 리듬감 정도로 이해되며, '리듬과 라임'으로 요약되기도 한다. 글자의 배치를 통해 운율을 형성하는 '라임(rhyme)'을 근간으로, 박자 안에 라임을 배치하는 방식이나, 라임을 뱉는 톤의 높낮이, 박자를 밀거나 당기는 정도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플로우가 만들어진다. 투박하게 요약한다면 단어 그대로 랩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문화의 초기 단계였던 만큼 올드스쿨 MC들의 플로우는 대부분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통상 하나의 마디 끝에 하나의 라임이 대응되기 때문에 이를 '단음절 라임'이라고 한다. 옛날 한시(漢詩)에서 구절의 끝에 각운을 맞추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힙합의 초기에는 드럼 사운드 자체도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한 라임 체계는 단순한 플로우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라킴은 여기에 의문을 던졌다. 어려서부터 색소폰을 듣고 또 연주해 왔던 그는, 힙합의 리듬이 재즈의 리듬처럼 더 다채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1987년, DJ인 'Eric. B(에릭 B)'와 함께 첫 스튜디오 앨범 <<Paid In Full>>을 내놓았다. 여기에서 라킴은 하나의 마디 안에 여러 음절이 운율을 이루는 복합적인 라임을 선보였다. 힙합 최초로 '다음절 라임'이 등장한 순간이다.


<<Paid In Full>>

라킴의 천재적인 발명을 이해하기 위해 일부러 멀리 갈 필요는 없다. 라킴의 곡은 바로 직전에 슈퍼스타로 떠오른 Run-DMC의 곡들과도 차별화가 된다. 풍부한 라임을 쓰는 와중에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한 묘사, 그리고 아주 부드러운 선율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힙합을 예술의 영역에 가깝게 가져다 놓았다. 가사 하나하나를 적어 라임의 배치를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적절한 설명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앞에서 말했듯 플로우는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리듬감이다. 꼭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우스갯소리로, 라킴이 가져온 새로운 패러다임에 치여 여러 기성 MC들이 좌절에 빠졌다는 후문이 있다. 실제로 Run-DMC의 대릴 맥대니얼스는 차 안에서 그의 오디오 엔지니어가 틀어 준 라킴의 곡을 처음 듣고는 그를 차 밖으로 쫓아내버렸다고 한다. 곡을 듣자마자 '우리가 하는 것은 힙합이 아니었구나, 우린 이제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그만큼 라킴의 플로우는 혁신적이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를 뛰어넘었다고 할 만한 새로운 라이밍 방식은 탄생하지 않고 있다. 이후 모든 랩이 라킴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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