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 트랙 1
1집: 올드스쿨, 힙합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을까?
07. (보너스 트랙 1) 힙합이라는 장르
너무 당연해서 궁금해 본 적도 없는 것이 있다. 힙합(Hip-Hop)이란 단어는 어디에서 왔을까? 여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75년 그룹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어리어스 파이브의 멤버 'Keith Cowboy(키스 카우보이)'가 친구의 군대 송별 파티에서 최초로 '힙합'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그는 군대에서 하는 구령을 흉내 내며 '힙-합-힙-합'이란 말로 박자를 탄 것이다. 이 구령이 흥을 돋우는 데에 매우 탁월했기 때문에 여러 MC들에게 유행하게 됐다. 그리고 훗날 아프리카 밤바타가 외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문화를 통틀어 무엇이라고 부르냐는 질문에 '힙합'이라고 답하면서 표현이 굳어지게 됐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했던 내 개인적인 경험을 들자면, 미군은 구보를 할 때 정해진 군가보다도 박자에 맞춰 프리스타일 구령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명이 대열 옆으로 나와 프리스타일로 선창하면 모두가 따라 하는 형식. 여기에서도 흑인들의 실력이 매우 발군이다.)
그런데 이 힙합이라는 장르 구분에는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힙합은 DJ, MC, 브레이크 댄스, 그래피티의 네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힙합에서 DJ와 MC의 관계는 매우 끈끈하다. 힙합이 거리의 음악일 때 DJ였던 이들이 음반 시장으로 오면서 대부분 프로듀서가 됐기 때문이다. 반면에 브레이크 댄스와 그래피티는 어떤가? 여러분은 미디어에서 성공한 음원이 비보잉과 함께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혹은 그래피티를 하는 래퍼는? 물론 국내에도 네 요소를 모두 갖춘 힙합 크루들이 있고, 미디어 바깥의 공간에서는 여전히 충분한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요소가 팬들에게 어필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브레이크 댄스와 그래피티는 힙합 음악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뭔가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야 힙합을 수입한 입장이기 때문에 힙합 문화가 그 일부만 활성화된 것일 수 있지만, 문제는 미국 본토에서도 비슷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힙합의 태동기인 70년대에 활동한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들 중 다수가 힙합의 네 가지 분류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브레이크 댄스와 그래피티가 힙합이라는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은 것은 사실이나, 완전히 같은 장르로 묶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당시 브롱크스의 파티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사람은 드물었다고 한다. 이곳에선 이미 유행이 지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활동했던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재즈나 락을 들었지 힙합을 듣지 않았다고 말한다. 해당 예술을 하던 당사자들에게 힙합 음악은 완전히 새롭고 다른 문화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힙합의 네 가지 분류가 미디어를 통해 보기 좋게 포장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힙합을 잘 팔리게 하기 위해, 미디어에서 힙합이라는 문화를 종합적인 문화로 보이게끔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문화의 한 장르라고 하려면 음악뿐 아니라 춤, 미술 등 다른 예술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실제로 가장 유명한 힙합 영화 중 하나인 찰리 아히언 감독의 <Wild Style>(1983)1)이 결정적이었다. 여기에서 최초로 힙합을 네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것으로 묘사하면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이 영화가 크게 성공하면서 네 요소의 관계가 (겉보기에) 더 강하게 형성됐고, 그 이후로 다양한 교류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2)
1) 한편 논란과는 별개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에는 당대 힙합의 유명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앨범은 올드스쿨의 명반으로 꼽히며 아직까지도 샘플링되고 있다.
2) 여담이지만, 어떻게 보면 힙합과 미디어는 싫든 좋든 참으로 질긴 인연을 타고났다. 후술할 힙합의 부정적인 이미지들 중 대부분이 미디어의 영향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힙합에서 언더와 오버를 논하며 미디어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과거의 시선은 이런 점들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그 사이 시대는 변했고 힙합과 미디어는 오히려 상생의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