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ssage
1집: 올드스쿨, 힙합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을까?
06. 역사의 신호탄
힙합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을까? 쿨 허크와 아프리카 밤바타의 업적은 힙합 역사로 볼 때에 매우 대단한 일이지만, 미국 사회 전체로 본다면 단지 하위문화 하나가 생겨났다는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문화는 매우 변화무쌍해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하위문화들이 새롭게 생겨났다가 빠르게 사라지곤 한다. 힙합 역시 그런 문화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래서 당시 힙합 뮤지션들 중에서도 힙합이 미국의 주류 문화가 될 것이라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1979년까지 음반으로 제작된 힙합이 단 한 곡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70년대는 힙합이 탄생한 시기인 동시에 힙합의 선사(先史) 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기 뮤지션들에겐 최고의 목표가 앨범이 아니라 공연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올드스쿨의 역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초기 줄루 네이션의 음악이나 이후 치열한 경쟁을 했다고 알려진 수많은 그룹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 방법이 없다. 여기에서는 그 최초와 최고에 대해서만 다뤘다.
우선 힙합 음반 제작의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은 'Sugar Hill Records(슈가 힐 레코즈)1)'의 힙합 트리오 'The Sugarhill Gang(슈가 힐 갱)'이었다. 1979년에 발매된 이들의 <Rapper's Delight>라는 곡이 대히트를 치며, 이들은 미국에서 성공한 최초의 힙합 그룹이 됐다. 힙합이 앨범으로 발매되고 높은 매출을 올렸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의외로 힙합계는 이 소식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 곡의 특정 부분이 이미 누군가 거리에서 했던 라임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기 때문이다. 힙합답지 않은 힙합의 성공은 한철의 짧은 유행에 불과해 보였다.
이런 애매한 상황을 정면 돌파한 이들은 다름 아닌 DJ들이었다. "힙합을 브롱크스에서 맨해튼으로!" 이 말과 함께 힙합은 적극적으로 주류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밤바타를 포함한 여러 DJ들이 'Fab Five Freddy(팹 파이브 프레디)2)'와 같은 인물의 소개로 뉴욕 시내의 클럽에서 활약했다. 그것도 백인 클럽에서 말이다! 뉴욕 중심부의 백인 클럽에서 힙합 음악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곧 힙합이 미국 전체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대열에 합류했던 DJ 중, 이 흐름을 타고 비상할 준비를 마친 이가 있었다. <The Message>를 탄생시킨 그룹, '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그랜드마스터 플래시 & 더 퓨어리어스 파이브)'의 DJ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였다.
이름도 긴 이 그룹은 말 그대로 DJ 그랜드마스터 플래시가 5명의 힙합 MC들을 모아 결성한 그룹이다. 힙합이 등장한 지 딱 10년 차가 되던 1982년, 이들이 내놓은 <The Message>는 파티음악에 갇혀 있던 힙합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 곡은 브롱크스 빈민가 흑인들의 비참한 삶을 낱낱이 묘사한다. 이 곡에 등장하는 매춘부, 좀도둑, 도박꾼, 마약상 등은 빈민가 출신 아이들의 피할 수 없는 미래에 해당한다. 가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빈민가의 흑인으로 태어난 아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시에 얼마나 어린 나이에 죽게 되는지(how you lived so fast and died so young)'를 노래한 것이다.
<The Message>는 당대 백인들 뿐만 아니라 힙합을 하는 당사자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주류 백인들에겐 흑인 게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힙합 뮤지션들에겐 힙합이 흑인 사회를 위해 무언가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했다. 더불어 <The Message>를 기점으로 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힙합에서 '자신의 삶'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힙합이 단순히 흥겨운 음악이었던 것에서 나아가 진정으로 흑인 사회를 대변하는 음악으로 발돋움한 것이다.3)
그런 점에서 <The Message>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백인이 중심이 됐던 미국 사회에 흑인의 문화가 쏘아 올린 힙합 역사의 신호탄. 이 신호를 바탕으로 힙합에는 새로운 물결이 시작된다. 올드스쿨이 끝나고 뉴스쿨(new school), 동시에 힙합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골든 에이지(golden age, 황금기)'의 등장이다. 이전까지의 힙합은 주제의 측면에서는 '파티 음악'에 국한됐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단순한 라임, 비슷한 사운드에 머물렀다. 또한 성공에 대한 이미지는 기존의 백인 스타들을 표방했는데, 성공한 힙합 스타들이 항상 흑인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 디스코 풍의 화려한 의상, 꽉 끼는 반짝이 재킷을 입었던 것이다. 뉴스쿨의 MC들은 이러한 기존의 문법을 철저히 부수며 힙합의 황금기를 견인한다.
1) Sugar Hill Records(슈가 힐 레코즈): Sylvia Robinson(실비아 로빈슨)이 '슈가 힐 갱'을 발굴하며 세운 레코드 레이블. 초창기 힙합을 주도했던 레이블이다. 후에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 더 퓨어리어스 파이브'도 슈가 힐 레코즈 소속으로 <The Message>를 발매했다.
2) Fab Five Freddy(팹 파이브 프레디):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던 예술가. 훗날 미국의 케이블 채널 'MTV'에서 <Yo!>라는 유명 힙합 뮤직비디오 쇼를 진행하며 힙합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3) 그런데 이 곡은 사실상 멤버 'Melle Mel(멜리 멜)'의 솔로곡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멜리 멜이 혼자 다 부른다. 이 시기 즈음 멤버들 간에 불화가 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이 곡을 끝으로 함께 작업한 곡이 없다. 한편, 멜리 멜 역시도 처음에는 이 곡을 부르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파티 음악인 힙합에서 의식적인 가사를 부르는 것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