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Kool Herc
1집: 올드스쿨, 힙합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을까?
올드스쿨(old school)은 '구식의', '전통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올드스쿨 힙합'이라고 하면 흔히 '옛날 힙합' 전체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물론 사전적 의미로는 대강 맞는 말이다. 하지만 힙합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의 올드스쿨이란 대략 1980년대 중반 이전의 힙합을 말한다(따라서 나스나 제이지, 투팍과 비기 모두 뉴스쿨이다). 지금의 우리가 얼핏 듣기엔 그 전이나 후나 옛날 음악인 건 매한가지일 수 있지만, 실은 음악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변화들이 힙합의 위상을 빈민가에서 세계의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04. South Bronx
가볍게 시작해보자. 힙합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됐을까?
100년? 200년? 머뭇거렸다면,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거다. 힙합은 어느새 우리 곁에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힙합을 즐기는 10대, 20대들에겐 이런 문화가 예전부터 있어 왔을 것만 같은 자연스러운 착각이 든다. 하지만 힙합은 미국 본토에서도 그 역사가 50년이 채 안 된 신생 문화다. 힙합이 '흑인들의 문화'라는 이유로 흥겨운 아프리카의 가락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할 것 같다면 그건 편견이다.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트로트를 즐겨 부른다고 해서 트로트가 우리의 전통 가락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트로트는 일본의 대중음악인 '엔카'에서 왔다). 힙합은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을까? 역사의 첫 페이지는 바로 이곳, 모든 힙합의 고향이자 우리에게는 야구와 맥주로 친숙한 이름, 뉴욕의 '사우스 브롱크스(South Bronx)'다.
사우스 브롱크스는 뉴욕시의 5개 자치구(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스태튼 섬, 브롱크스) 중 한 곳인 브롱크스의 남서쪽 구역을 말한다. 브롱크스는 우리에겐 '브롱스'라는 발음으로 더 익숙한데, 바로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양키 스타디움'이 있는 곳이며, 한국에는 동명의 맥주 브랜드(심지어 국산.. 브랜드다)가 전국에 프랜차이즈 되어있기도 하다. 하지만 1970년대의 브롱크스는 흑인 게토1) 지역으로 유명했다. 상류층 백인들이 더 나은 지역으로 이주해가면서 이곳에는 여러 출신의 이민자, 그중에서도 흑인 저소득층이 자리 잡게 됐다. 한 번 형성된 슬럼은 지속적으로 집값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을 유입시키며, 정책으로부터 소외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게다가 이곳에 집을 가진 사람들이 낮아진 집값 대신 보험금을 타기 위해 스스로 집에 불을 지르는 사례도 생겨났다. 70년대의 브롱크스엔 연일 방화와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통에도 문화는 살아있기 마련이다! 흑인들은 '블록 파티(block party)'에서 자생적인 문화를 이어 나갔다. 블록 파티란, 지역 곳곳의 소규모 파티를 가리키는 광범위한 단어다. 브롱크스의 흑인들은 지역의 유명한 DJ를 중심으로 지금의 클럽과 비슷한 블록 파티를 즐겼는데, 그 유명 DJ들 중 하나가 역사에 남을 위대한 시도를 선보였다. 힙합 음악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DJ Kool Herk(쿨 허크)'의 등장이다.
1973년 8월 11일, 뉴욕 사우스 브롱크스 1520 세지윅 에비뉴(Sedgwick Ave.)의 한 오락실! 힙합 팬이라면 이 한 줄 정도는 외우는 것을 추천한다. 힙합이 탄생한 시간과 장소, 주인공은 DJ 쿨 허크다. 쿨 허크는 당시 뉴욕 전역을 주름잡던 '디스코 열풍'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그의 파티에서 디스코 대신 펑크나 재즈 등 아무도 모르는 숨은 명반들을 찾아 틀었고, 그 덕에 브롱크스에서 가장 유명한 DJ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해 명실상부 최고의 DJ로 발돋움하는데, 힙합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브레이크 비트'를 창안해 낸 것이다. 그가 이를 처음 선보인 곳이 바로 사우스 브롱크스 1520 세지윅 에비뉴였다.
브레이크 비트를 이해하기 위해선 '디제잉'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DJ라고 하면 음악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며 파티를 주도하는 핵인싸의 모습을 떠올리지만, 이 시기에는 그런 화려한 디제잉 기술이 없었다. 따라서 디제잉에 항상 기술적인 한계가 따랐는데, 그중 하나가 한 음반에서 다른 음반으로 넘어갈 때 음악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턴테이블에서 음반을 꺼냈다 넣는 작업은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쿨 허크는 이 쉬는 시간을 없애버리는 마법 같은 일을 선보였다. 바로 두 개의 턴테이블을 동시에 사용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의 음반이 돌아가고 있을 때 다른 음반을 다른 턴테이블에 동시에 틀어 교묘하게 두 음반이 이어지게 만들면서 음반을 교체한 것이다. 현재의 비트믹싱, 또는 비트매칭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쿨 허크는 이 기술을 이용해 음반에서 드럼 반주로만 이뤄진 부분, 즉 가장 리듬감이 넘치며 춤을 추기에 제격인 '브레이크 파트'만을 반복해서 틀었고, 이것이 쉬는 시간을 메인 음악으로 변신시킨 '브레이크 비트'가 됐다.
쿨 허크의 브레이크 비트는 브롱크스 전역을 강타했다. B-Boy와 B-Girl, 즉 '브레이크 댄서'가 브레이크 비트에 맞춰 춤을 췄다. DJ 옆에서 사회를 보던 'MC'는 점차 비트에 맞춰 라임을 뱉기 시작했다. 여기에 '그래피티' 문화가 합쳐지면서, 비로소 우리가 아는 '힙합'이라는 커다란 장르가 형성됐다. DJ, MC, 브레이크 댄스, 그래피티 이 네 가지를 가리켜 힙합의 4대 요소라 부른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DJ와 MC, 브레이크 댄스와 그래피티가 흑인 사회에서 쿨 허크 이전에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쿨 허크를 힙합 문화의 선구자로 보는 이유는, 이 모든 요소를 힙합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결합시키는 데에 그의 브레이크 비트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여기에는 다소 이견이 존재한다 - 07화). 흑인 사회에 쿨 허크가 남긴 힙합이라는 영향력이 잘 실감 나지 않는다면, 좋은 예시가 하나 있다. 비슷한 시기, 브롱크스 동부의 어느 갱단들의 이야기. 서로를 물고 뜯던 이 갱들은 힙합이라는 문화를 바탕으로 화합과 공존을 외치기 시작했다.
1) 게토(ghetto): 강제 격리 구역이나 슬럼가를 뜻한다. 중세시대 유럽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시켰던 구역을 게토라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 이탈리아 말로 '게타(gheta)'는 대포 주물공장을 뜻하는데, 당시 유대인 밀집 지역이 게타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을 갖게 됐다. 20세기에 들어 흑인 슬럼가를 '블랙 게토'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