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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Feb 02. 2021

떡볶이 연대기 4

홍대 앞 트럭 떡볶이

퇴근 후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를 데리고 남편이 달려간 곳은 홍대 앞이었다. 쌀쌀한 겨울 날씨에 해는 어둑어둑 져가고 여기저기 하나둘씩 불이 켜지며 젊은이들의 거리답게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했다. 남편은 맛있는 떡볶이를 사주겠다며 기대하라고 의기양양 말했다.


상가들이 모여있는 골목을 지나 커다란 트럭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중앙 주차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작은 불빛 아래 서서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그곳엔 젊은 총각들 몇 명이서 쭈그리고 앉아서 떡볶이를 팔고 있었다. 그들은 무뚝뚝했고 상냥한 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은 아무런 얘기가 없다가 갑자기 내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여기가 조폭 떡볶이집이래.”  그러고 나서 조용한 그의 말투대로 떡볶이를 주문했다. 조폭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며 일단 분위기 파악을 해야 했다. 남편의 귓속말을 듣고 보니 트럭에 무심히 앉아있는 총각들이 세상 터프하게 보이기도 하고 말수도 없이 떡볶이만 파는 게 꽤나 사연이 많은 사람들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그들의 스토리를 만들다 지워보다 하니 이미 빨갛고 예사롭지 않은 자태를 뽐내며 윤기 좔좔 나는 떡볶이가 내 눈앞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이쑤시개를 조신하게 꺼내 아주 살짝 떡볶이를 쏘옥 찍어서 눈치를 보며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긴장하면 소화가 잘 안 되는 지라 꼭꼭 오래 씹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반면에 후다닥 빨리 먹고 어서 자리를 떠야 할 거 같았다. 그러나 떡볶이를 한입 먹는 순간, 이 복잡한 생각이 싸악 사라졌다.


생각보다 매콤하고 달콤하니 숙성된 양념을 쓴 게 분명한 딱 내 스타일의 떡볶이었다. 게다가 함께 준 오뎅 국물은 커다란 꽃게 한 마리가 통으로 들어가 진하게 우려진 게 차가운 겨울 날씨와 너무 잘 어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리를 상당히 잘하는 조폭임에 분명했다. 얌전하게 먹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어묵 국물도 더 달라고 불쑥 얘기하며 요구사항이 많아지면서 나를 불안하게 했다. 이 남자를 멈추게 하려면 빨리 먹고 가는 방법이 최고였다.


그렇게 조폭 떡볶이집을 나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남편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기 저 사람들 여기서 장사하면 안 되는 거 아냐? 경찰이 모르나?”  그러자 남편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혹시 저 사람들 진짜 조폭인 줄 알았어?  하하하”  나는 어이없어서 다시 물었다. “뭐야? 조폭들이 하는 거라며?” 그 순간 나는 남편의 장난에 속았음을 알아차렸다. “이름이 조폭 떡볶이야. 조폭이 어딨어 여기? 정말 몰랐어? 하하” 속아 넘어가는 나를 보니 신이 났는지 재밌어했다. 눈치 보며 떡볶이를 먹었던 순진한 내 모습을 생각하니 억울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나를 지켜본 남편은 얼마나 웃겼을까?


여하튼 맛도 꽤 좋았던 그곳이 이름만 조폭 떡볶이라 하니 복잡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편안해졌다. 조폭과 떡볶이! 잘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상상을 넘어 꽤 재미있는 이름인 것은 분명했다.


그 후 친구들과도 홍대에서 만날 일이 있으면 남편에게 받았던 놀림거리를 준비하며 조폭 떡볶이를 찾아가곤 했지만, 눈치 빠른 친구들은 잘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조폭이 왜 떡볶이를 파니? 말이 안 돼~” “에이, 저 아저씨들, 조폭 얼굴이 아닌데..”  각양각색의 의구심을 드러내며 서로 피식피식 웃었다.


그 당시 얘기를 들어보면, 젊은 총각들이 만드는 트럭 떡볶이는 너무 맛있어서 급기야 마약 떡볶이라 부르게 되고 그들이 장사를 밤늦게까지 하다가 취객들과 시비 붙는 일이 생기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떡볶이 만드는 총각들이 조폭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났다고... 그런 호기심은 떡볶이 장사를 더 잘 되게 하고, 게다가 긴가민가 하는 순진한 나 같은 손님들은 떡볶이를 공손히 받아가서 조용히 먹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남편이 비밀을 말해주지 않았어도 호기심 많은 나는 겁도 나지만 살짝 두려움에 떨면서 그 떡볶이 맛을 그리워 다시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매콤 달콤 마약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는 그곳을 찾아가곤 했다. 조폭이란 색안경을 벗고 보니 꽤나 기가 쎄 보였던 총각 셋은 지극히 평범한 동네 젊은 청년들 모습으로 성실하게 떡볶이를 휘휘 젓고 있었다. 같은 사람들을 이리도 다르게 볼 수 있다니...


남편은 지금도 가끔 장난스레 묻는다. “한국 가면 조폭 떡볶이 먹으러 갈까? 하하하” 20년 전 얄미운 장난을 쳤던 익살스러운 그의 웃음소리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홍대 앞 눈치 떡볶이를 기억하게 한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터/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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