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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Mar 08. 2021

떡볶이 연대기 5 (마지막 편)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는 다소 흥분되어 있었다. 규모가 꽤 큰 한국 슈퍼가 동네 근처에 새로 생겼다고 귀띔해주며 신나했다. 그 소식을 듣고 주말에 남편과 들러보니 그곳엔 한국의 ㅇ마트를 연상케 할 만큼 Made in Korea의 택을 단 상품들이 앞다투어 진열되어 있었다.  어느새 수북이 우리의 쇼핑카트가 채워지고 있었다. 소문으로 듣던 김치부터 유명 과자까지  게다가 냉동 코너에서는 나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가 버린 상표는 바로 떡볶이였다. 아련한 그 시절을 부르는 ‘추억의 국*** 떡볶이’라는 이름으로 빨간색의 강렬한 포장을 뽐내며 있었다.


유리 냉장고에서 집어내지 않고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듯 호기심이 생겼다. 요즘은 한국도 떡볶이 열풍인지 각양각색의 떡볶이들이 다양한 레시피로 탄생되어 제각각 이름을 가지고 선보이는 듯했다. 한국에 갈 때마다 진화하는 떡볶이를 먹어보고 감탄도 하고 또는 기대가 크니 실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기회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지라 열심히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어 먹는 방법밖엔 없었다.


우연히 사 오게 된 이름하여 국*** 떡볶이니 혹시나 그 예전의 추억의 떡볶이 맛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껏 부풀어있었다. 과연 그때 그 시절 맛을 재연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내 작은 일탈의 그 떡볶이 사건이 머릿속에 훅 스쳐가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의 걱정어린 잔소리도 함께 묻어서...  그때의 맛을 나만 그리워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의 첫 번째 떡볶이는 아마도 친구들과 오손도손 어울려 작은 용돈을 모아 사 먹던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에 머물러 있을까?


집에 돌아와 한국 슈퍼에서 사 온 떡볶이 패키지를 열어보니 진공 포장된 떡볶이 떡과 소스들 그리고 어묵 한 봉지가 들어있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양념 걱정 없이 주어진 소스 한 봉지면 한결같은 맛을 내어주는 그런 떡볶이였다. 레시피대로 만들어보니 꽤 달달한 맛과 짭조름한 매운맛이 어우러져 예상 밖의 떡볶이 맛을 내었다. 같이 먹던 딸아이는 너무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면 수저 내려놓을 생각을 하질 않았다. 내가 해준 구수하고 얼큰한 떡볶이보다 더 좋아하는 듯해서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떡볶이는 자극적이지 않고 너무 달지도 너무 맵지도 않은 그런 국물 떡볶이기에 생각보다 그다지 닮아 있진 않았다.


모든 사람이 떡볶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떡볶이의 추억이 나와 같지 않은 남편은 그래도 내 떡볶이 사랑을 지지해준다. 떡볶이를 먹자 하면 다른 의견을 내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같이 먹어준다. 먹을 때마다 내가 만든 떡볶이가 제일 맛있다며 내 수고에 힘을 불어넣어준다. 예전과 달리 이곳에선 떡볶이 떡은 구하기 쉬워졌고 어묵도 항시 준비해 두면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 일은 그다지 번거롭거나 수고스런 일이 아니다.


햇살 밝은 날 빨래 한판 하고 얼큰한 매운맛이 당길 때, 기분이 좀 처져 있거나 입맛이 없을 때, 혹은 한국이 그리울 때 어김없이 떡볶이 떡을 준비한다. 어묵을 먹을 만한 크기로 썰고, 신선한 양파와 파를 어슷어슷 썰어놓으면 끝이다. 가끔 삶은 달걀도 넣고 치즈도 뿌려보고 게다가 매운맛은 내 맘대로이다. 다시마랑 멸치로 국물을 만드니 구수하고 얼큰한 맛에 숟가락부터 찾게 된다.


우리들은 각각 자신의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누군가는 한가로이 실려오는 바람 한줄기에, 누군가는 무심코 듣게 된 음악 한 소절에, 누군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 냄새에 그들의 추억이 불려진다.


어린 시절 다양한 먹거리 중에서, 유독 떡볶이를 좋아했던 나는 이제 불혹훌쩍 넘긴 중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볶이 사랑은 멈추지 않고 진행 중이다.  국물 떡볶이 레시피도 조금은 변해갈지  모른다.  인생의 호흡을 따라 점점  맵게, 점점  건강한 맛으로 추억을 머금은  나의 떡볶이 연대기로 기록되고 있다.


나의 국물 떡볶이
얼큰한 국물 떡볶이와 오렌지 쥬스


그동안 제 ‘떡볶이연대기(1-5)를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 구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패딩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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