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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Dec 17. 2020

떡볶이 연대기 3

언니의 안방 떡볶이집

중학교 때 해마다 환경미화 준비를 하느라 학교가 들썩들썩했다. 각 학급 심사를 하는 동시에 장학사 맞이할 준비에 선생님들까지 초긴장을 하곤 했다. 학급의 임원들은 하교 후 남아서 교실 꾸미기에 정신이 없었고 해가 뉘엿뉘엿질때쯤 옹기종기 모여서 집으로 가곤 했다. 며칠을 그렇게 고생하다 배고픔을 달래며 걷다 보니 허름한 구멍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곳은 아무 간판도 보이지 않아서 그냥 지나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지날 때면 항상 맛있는 떡볶이 냄새가 가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럴 땐, 으레 용기 있는 친구가 나서는 법이다. 떡볶이에 일가견이 있는 내가 궁금한 나머지, 유리창 너머로 살짝 들여다본 그곳은 아주 작은 테이블도 없는 떡볶이 집이었다. 드르륵 호기심에 문을 열었다. 그다지 밝지 않은 전구 하나가 달랑 켜진 작은 주방이 보였다. 약 30대 정도로 보이는 언니가 커다란 팬에 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 떡볶이는 냄새도 좋았지만 비주얼에서 단연 압도적이었다. 윤기가 좌르르르 흐르면서 진한 빨간색의 색감이 매콤 달콤한 떡볶이의 맛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했다. 떡볶이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친구 중 한 명이 물었다 “떡볶이 파나요? 그런데 어디서 먹나요?” 언니는 반갑게 우리들을 맞이했다. “어서 와! 여기 안에서 먹을 수 있어? 몇 명이야?” 짧은 머리의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우리는 문을 닫고 들어와 서성서성 거리며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언니는 일어나서 우리가 앉을 곳을 안내해주었다. 다름 아닌 언니의 방이었다. “신발 벗고 들어가 편히 먹어! 떡볶이 곧 가져다줄게.”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며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는 조용히 머리를 숙여 언니의 작은 방에 들어갔다. 머쓱한 느낌을 감춘 채 모여 앉아 조용히 떡볶이를 기다렸다. 그 수다쟁이들이 말이 적어진 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멀뚱멀뚱 언니 방을 둘러봤다. 방은 아주 작았다. 4명이 간신히 둘러앉을 수 있는 조그마한 밥상이 놓여있었고, 작은 창문 아래에는 언니의 화장대 그리고 이불과 옷을 넣어두는 장롱도 눈에 들어왔다.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순간이 어색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떡볶이집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자체가 서로를  잠시 침묵하게 만들었다. 언니는 웃으면서 떡볶이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물었다 “ 너네 몇 학년이니? “  “중학교 1학년이에요.” 우리는 대답했다.  “ 그래 , 맛있게 먹어!” 아무렇지 않은 듯 자기 방을 선뜻 내어주고 다시 주방으로 갔다. 초록색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있는 빨갛고 윤기가 흐르는 떡볶이는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쫀쫀한 떡에 양념이 잘 스며들어 매콤하고 끝이 꽤 오래 남는 아주 맛있는 떡볶이였다. 게다가 양념이 숙성된 건지, 결코 가볍지 않은 구수한 맛까지 내는 감칠맛도 있었다. 그냥 분식집에서 흔하게 먹을 수 있는 떡볶이가 아니었다. 계속 찾게 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맛에 이끌려 우리 모두는 감동하고 그날 이후부터 그 언니의 안방은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시험이 끝나거나, 친구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님 방과 후 학교일을 더 해야 할 때 꼭 들려 언니의 떡볶이를 먹었다. 우리와 가까워진 언니는 부모님이 안 계시고 군대 간 남동생이 보고 싶다며 솔직한 얘기도 해 주었다. 가끔 쓸쓸한 그늘진 언니의 얼굴을 보기도 했다. 그날은 떡볶이가 좀 더 매웠던 거 같다. 내 생각이지만. 우리는 언니 떡볶이를 먹으러 갈 때마다 노처녀인 언니한테 빨리 시집가라고 장난을 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군대 간 남동생 학비 걱정을 하며 어두워진 표정을 호탕하게 웃어넘기곤 하였다. 그러고선 바로 떡볶이 떡을 가락가락 손으로 뜯으며 떡볶이를 만들던 언니 뒷모습이 생각이 난다.


내가 먹었던 그 떡볶이는 언니의 미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자기의 안방을 내어주면서 떡볶이에 삶의 희망을 싣고 있었던 거 아닐까? 중3이 끝나고 다른 지역 고등학교로 가게 되어 오랜만에 그곳을 지나다 언니를 찾아갔다. 역시나 언니는 씩씩한 모습으로 떡볶이 한 그릇을 따뜻하게 내어주며 내 고등학교생활을 응원해 주었던 기억은 아직도 그 언니를 무척 선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 후로 오랜만에 학교를 찾아갈 일이 있어 들른 그곳엔 언니의 떡볶이집은 사라진 지 오래인 듯 이미 높은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내 추억과 함께 했던 그 언니의 안방 떡볶이는 따뜻한 정과 손맛을 기억한 채 내 인생 떡볶이로 남아있다. 살기가 팍팍했을 언니가 선택했던 그 떡볶이는 지금쯤, 아니 이미 언니의 꿈을 완성한 멋진 소스가 되어 있기를 희망해 본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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