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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Dec 04. 2020

떡볶이 연대기 2

나 홀로 혼볶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용돈이 조금 늘어났다. 엄마의 불량식품의 기준은 많이 완화되었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하굣길에 아이스크림이나 빵 사 먹는 즐거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문방구를 들려서 신상품 문구류나 먹거리를 스캔하고 용돈을 써보는 재미에 그곳은 항상 참새들의 방앗간이었다. 그 당시에 아이들은 불량식품 부류에 속하는 쫀쫀이를 난로에 구워 먹기도 하고 하물며 문어다리를 질겅질겅 씹어먹으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매콤 달콤한 떡볶이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비교적 큰 쇼핑센터가 있었다. 그 쇼핑센터 입구에는 작은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만두, 짜장면, 비빔밥 등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지금의 푸드코트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엄마와 슈퍼를 가다가 코너 쪽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떡볶이집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즉석 떡볶이. 주문과 동시에 떡볶이를 바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나의 호기심은 이미 그 떡볶이 집에 꽂혀 조만간 꼭 한번 와보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용돈의 반은 떡볶이용으로 남겨두는 지라 새로운 떡볶이와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절묘한 타이밍을 노렸다.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시간을 피해서 아주 적당히 배가 고파야 떡볶이를 먹는 기쁨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깐. 이번 기회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간을 피해서 용기 있는 혼밥, 혼볶이를 해 볼 작정으로 나의 미션은 설정되었다. 이제 카운트 다운, 혼자 먹는 떡볶이를 실행할 때가 왔다.


나른한 주말 오후, 배가 출출한 느낌이 들자 운동화를 신고 나갈 준비를 했다. 즉석 떡볶이를 영접할 수 있는 그 타이밍이 온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친구와 약속 없이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것을 처음이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해서 그곳에 다다르니  ‘떡볶이 500원’이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비싸서 자주 사 먹기는 그른 듯했다. 뚜벅뚜벅 걸어가서 다리가 긴 조그마한 스툴 의자에 앉았다. 혼자 오니 머쓱했지만, 오늘 먹어 볼 새로운 떡볶이에 한껏 들떠 있었다.  “아줌마, 떡볶이 일 인분 주세요!” 나는 의기양양하게 동전 500원을 손에 쥐고 말했다.


나름 깔끔한 쇼핑센터에 잘 어울리게 아주머니는 요리사 모자에 조리복까지 입고선 주문을 받았다. 그녀는 주문과 동시에 가스불에 냄비를 얹고 뚝딱뚝딱 떡과 어묵 그리고 야채를 넣어 휘리릭 떡볶이를 만들어 내었다. 말 그대로 즉석떡볶이었다. 기다란 하얀 접시에 떡볶이 한 그릇이 차르르 담겨 있었다. 빨간 떡볶이에 어묵과 갖은 야채들, 당근, 양파 게다가 깨소금이 솔솔 뿌려져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조리사 아주머니는 혼자 먹는 나에게 말했다. “ 학생, 이게 쌀떡이야. 좀 비싸지만 쫀득하고 맛있지! 밀가루떡은 비할게 아니라니깐..” 나는 “아, 네...” 하며 쌀떡 떡볶이를 즐길 준비를 하였다. 통통한 떡을 양념에 쏙쏙 찍어 한입 베어 먹으니 정말 쫀득쫀득하니 식감을 더해주었고, 뚝뚝 끓어지는 밀가루 떡과는 먹는 재미가 달랐다. 야채도 적당히 들어가 떡볶이와 함께 먹을 수 있어서 불량식품이라는 딱지를 단번에 떼어낼 수 있는 음식이라 내심 기뻤다. 그나저나 즉석 떡볶이를 500원이나 주고 사 먹는 나의 사치가 얼마나 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피식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눈치 없는 친구와 나눠먹지 않아도 되는 이 안락한 시간이야말로 내 돈 500원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이야말로 나의 초등 혼밥의 하이라이트임에 분명했다.


삼삼오오 친구들과 수다 떨며 어울려 노는 것도 좋지만 나 혼자 떡볶이 먹는 시간은 참 짜릿한 행복이었다. 아주머니의 그 빠른 손놀림에 완성된 즉석 떡볶이를 먹은 다음 매콤한 맛을 달래기 위해 동네빵집에 들렀다. 내 후각을 자극하는 많은 빵들이 있지만, 떡볶이 먹은 후에는 달달한 단팥빵이 최고였다. 가격도 싸고, 다른 빵들에 비해서 묵직하니 오래 먹을 수 있었다. 달콤한 팥앙금에 빵 한입 베어 먹으면, 떡볶이로 얼얼한 입안에 평화가 찾아왔었다. 그 단팥빵 한입한입 먹으며 노을 지던 아파트 거리를 걷고, 그 길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팝가수 아하의 ‘Take on me’는 내가 떡볶이를 먹으러 가면서 마주치던 일상들이었다. 그때의 혼볶이와 단팥빵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팝가수 아하는 사춘기 소녀의 소확행 실현 목록으로 아직까지 또렷하게 기억되고 있다.




사진출처: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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