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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Nov 25. 2020

떡볶이 연대기 1

첫 번째 일탈

초등학교 때 내가 살던 동네 옆에는 자그마한 시장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그 시장 골목으로 삼삼오오 몰려 갔다. 그곳에 있는 문방구 앞은 항상 붐볐다. 남자아이들은 오락을 하거나 딱지를 사고 여자 아이들은 그 옆 떡볶이집에 오순도순 모여들었다. 엄마는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은 불량식품이라고 하셨고 떡볶이도 그중에 하나였다. 맛있게 보여도 못 먹는다 하니 궁금증은 더 커져갔다. 그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내 눈에 스치는 아이들의 광경은 부럽기까지 했다. 커다란 철판에  빨간 떡볶이를 국자로 휘휘 젓는 아줌마는 항상 바빠 보였다. 내 코끝에 스치는 떡볶이 냄새는 매콤 달콤하며, 오후의 식욕을 한껏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였다. 만약 엄마 말을 어기고 이걸 사 먹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질 생각을 하니 떡볶이 사 먹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나았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친구들과 함께 그 시장 골목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한두 명씩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떡볶이를 주문하는 걸 보니깐 내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 뭐 어때? 얘네들은 자주 먹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서 아주머니에게 용기 있게 건넸다. “ 저도 떡볶이 주세요!” 내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인생 처음 일탈을 하는 순간이었다. 아주머니에게 받아 든 떡볶이는 작은 스댕 그릇에 담겨있었다. 빨간 국물도 들어있고 뽀얀 긴 떡이 몇 개가 담겨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냄새를 맡고선 떡을 한입 베어 무니, 매콤 달콤, 자꾸 먹고 싶은 맛이어서 그릇을 싸악 비우고 있었다. 그때 어디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ㅇㅇ야, 여기서 뭐해? 오늘 엄마 만났는데, 너 올 시간이라고 부랴부랴 집에 가셨어.” 떡볶이 맛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내 친구의 엄마였다. 하필 여기서 만나다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총알처럼 달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기다리고 계셨다. “어디 갔다 지금 오니? 늦게 끝난 거니?” 나는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청소하느라고...”  엄마의 표정은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다시 물으셨다. “청소하고 왔다고?”  나는 대답했다. “ 응, 왜?” 엄마는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화가 나신 듯 말했다. “조금 전에 은경이 엄마가 너 떡볶이 집에서 봤다는데... 내가 그거 불량식품이라고 사 먹지 말라고 했지?” 순간 아무 말을 못 했다. 거짓말과 불량식품이 설상가상으로 내 맘을 죄어왔다. 사실 내가 떡볶이 먹은 것을 고자질한 내 친구 엄마가 더 얄미웠다. 엄마는 내 일탈에 일침을 주시듯 말씀했다. “너 배 아프면 어떡할라고.. 병원에 가야 해! 큰일이다!” 그때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 그거 불량식품 아니야, 내 친구들은 다 사 먹는데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만 못 사 먹냐고! 배 하나도 안 아픈데..” 엄마한테 큰소리쳐 놓고 속으로는 제발 배는 아프지 말자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한동안 그 떡볶이 집에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엄마뿐만 아니라 내 친구의 엄마까지 그 떡볶이집을 알아버렸으니 당분간 떡볶이 생각은 접는 게 나았다. 학교가 끝나면 시장을 거쳐서 집으로 오는 일이 줄어들었다. 엄마는 건강 떡볶이를 자주 만들어 주셨다. 나름대로 그 시장 골목 떡볶이를 대신할 만했다. 건강한 맛의 엄마 떡볶이는 안심 떡볶이였다. 먹고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으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골목에서 팔던 떡볶이가 많이 그리웠다. 말랑말랑한 떡을 매콤 달콤한 국물에 찍어먹으며 왁자지껄 떠들던 모습이 담긴 스댕 떡볶이! 뜨거운 긴 떡을 꺼내 호호 불며 먹었던 그 순진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떡볶이집 현장 검거로 마무리된 나의 소심한 일탈은 아직도 그때의 추억의 맛과 냄새를 간직한 채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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