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엄마에게 보내드릴 달력을 산다. 엄마는 가끔 해가 지난 달력이라도 바로 치워버리지 않고 맘에 드는 사진이나 그림을 잘라내어서 엄마의 눈길이 자주 머무는데 붙여두신다. 아마도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려는 듯하다. 그런 맘을 알기에 엄마의 취향을 담은 자주 봐도 질리지 않고 은은한 그림이 있는 달력을 찾는다. 작년 이맘때쯤 쇼핑을 마치고 사놓은 엄마의 2020년 달력이 있었다. 오늘내일 항공택배를 부치려다 한국이 코로나가 심해지는 바람에 여러 물건들까지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이곳 호주는 2020년 땡볕의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상상치도 못한 바이러스의 공격에 몸을 사리며 여름, 가을을 보내고 또 겨울이 왔을 때는 코로나가 심해져서 이동 제한령까지 내려진 상태였다. 두 달 반 동안 집 밖을 잘 나가지도 못한 채 답답하게 지내야만 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코로나로 인해 엄마에게 보내질 달력은 제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남겨졌다. 내 방 한 귀퉁이에는 한국으로 가지 못한 엄마의 택배 상자가 덩그러니 있다. 자그마치 1년이란 시간이 지나 먼지도 쌓이고 설렘도 퇴색되어진 채 어느새 2020년 끝자락에 와 있다.
여기는 다시 여름이다. 다행히도 코로나가 조용한 틈을 타서 연말 분위기로 술렁거리며 사람들은 쇼핑을 하느라 분주하다. 우연히 작년에 달력을 샀던 그곳을 지나가다 엄마에게 보내드리려 했던 비슷한 달력이 눈에 띄었다. 이상하게도 달력을 고르는 내 모습이 데자뷰처럼 느껴지면서 올 한 해 코로나로 바뀐 일상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내년은 훨 나으리라는 생각으로 엄마의 주방에 희망차게 걸릴 예쁜 그림들이 있는 달력을 샀다. 2021이라는 숫자를 보니 다음 해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차 올랐다. 이번 달력은 엄마의 주방 작은 창가 옆에 걸려서 보고 싶은 가족을 부르는 시간들로 채워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2020 엄마의 달력>
울려 퍼지는 캐럴,
사람들의 손길을 한없이 기다린다.
엄마의 주방에 어울린다며
그녀의 노란색 장바구니에 담긴다.
차곡차곡, 그녀의 엄마를 함께 만날 택배 친구들과
자리를 나눠 설렘 가득한 먼 여행을 기대한다
기다림 속에 시간은 똑딱똑딱 잘도 간다
떠 밀려오는 마스크 친구들한테 택배 자리를 내어주고 나니
떠날 시간은 끝이 나 버렸다.
이제 시간이 없다. 올해가 열흘 남짓 남았다.
펼쳐보지 못한 내 인생은 딱딱한 비닐 속에서 꺼내져
싹둑싹둑 그림 한 점으로 남아
햇살 좋은 그녀의 주방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