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마켓에 가면 몇몇 군데에서 나무 모종을 판다. 화분에 잘 담겨서 파는 것도 있고, 뿌리째 쑥 뽑아놓고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경우도 있다. 내가 심은 자두나무는 뿌리째 들고 온 경우였다. 행여나 뿌리가 다칠까 조심조심 들고 와 심어놓은지 어언 삼 년이 흘렀다. 여느 나무처럼 자리를 옮긴 처음은 몸살을 하더니 시간이 지나니 꽃도 피고 키도 커지며 잘 자라 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식물을 심을 줄만 알지, 잘 키우는 데는 영 소질이 없기에 항상 앞선 마음으로 사다 두고는 노심초사한다.
이 자두나무는 그런 나와 함께 몇 번의 계절을 보냈다. 바쁘게 휘리릭 자두나무를 지나가다 흐드러지게핀 하얀 꽃을 보고 빙긋이 웃었고 그다음에는 달랑달랑 매달린 열매를 보면서 자연의 신기함에 놀라곤 하였다. 그렇게 보고 또 보고 하다 여름의 한복판에 왔다.
연말에 크리스마스라 분주하고 집 밖을 수시로 들락날락할 때도 자두가 열려있는지 모르게 무심히 지나쳐 다녔다. “혹시 자두 열린 거 알아? 내가 사진도 찍어두었는데..” 남편이 넌지시 말했다. “아, 그래? 어디 어디?” 슬리퍼를 재빠르게 신고 나가보았다. 초록색 잎사귀들 사이에 빨간 자두가 듬성듬성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생각보다 많이 달려있었다. ‘ 어머나’를 연신 외쳐대며 아이처럼 이리 보고 저리보고 신이 났다.
변화무쌍한 여기 멜번의 날씨를 버텨내며, 빨간 자두를 만들어낸 자두나무가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비바람이 드세게 불면 매달린 아기 자두들은 대부분 떨어지는 게 다반사여서 작년 재작년에도 자두를 몇 개 보지 못했다. 올해는 웬일인지 흐드러진 초록 잎사귀에 댕글댕글 매달린 빨간 자두들을 보니 마치 고생한 2020년, 우리 모두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껴졌다. 올해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빨간 자두 오나먼트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이 자두나무면 충분하다며 우리 가족은 만장일치를 했다.
예상치 못한 자두나무의 결실은 나에게 희망과 보람을 주었다. 의욕은 넘치지만 식물을 잘 키울지 의심하는 나에게 용기를 던져주었고 게다가 관심으로 지켜보면 뜻밖의 선물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도 전해주었다. 빨갛게 잘 익은 자두를 따서 입은 옷에 쓱쓱 문질러 한입 베어 무니 달콤한 자두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자두 한 소쿠리에 맘이 따뜻해지는 연말을 보낼 생각에 설레었다. 자두잼을 잔뜩 만들어 나눠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다.
다가오는 2021년도 모두에게 뜻밖의 선물이 찾아오는 해가 되길 붉은 자두 하나를 깨물며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