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딩턴 Jan 11. 2021

첫인상

치과에 가는 날인데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예약시간까지 1시간 남짓 남았다. 부랴부랴 서둘러 나서는데 차도는 앞뒤로 꽉꽉 막혀있다. 바쁜 마음에 요리조리 차선을 바꿔보다가 허둥대지 말자며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운전을 했다.


오늘 치료는 다름 아닌 충치치료. 생각만 해도 무서워서 코로나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서야 이 게으름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마음가짐으로 한 시간이 넘는 드릴 소리와 씨름을 했다. 게다가 입을 계속 벌리고 있으니 턱도 아프고 어서 끝나기만을 두 주먹 꼭 쥐고 기다렸다. 드디어 치과 샘의 한마디 “수고하셨습니다.”에 모든 긴장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치과를 나서는데 여전히 어금니가 얼얼하니 마취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집에서부터 생각한 낫또를 사러 치과 옆 쇼핑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에 들어가 낫또 두 봉지를 손에 들고 계산대로 갔다. 머리를 짧게 자른 젊은 여자가 인사도 없이 퉁명스럽게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계산 끝에 중국어로 말을 하더니 내가 못 알아들으니 영수증을 줄까 하고 영어로 성의 없는 짧은 말을 했다. 영수증은 됐다 하며 낫또 두 봉지를 챙겨 뾰로통해진 얼굴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손님한테 너무한 거 아냐? 인사도 없이... 저러니 가게에 사람이 없지.’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다음 가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둘러 남은 쇼핑을 마치고 이층의 주차장으로 허겁지겁 걸어가는데 주차권 발행기가 멀리서 보였다. 차를 주차하고선 가방 포켓에 고이 모셔둔 주차권이 생각났다. 이곳에 오면 주차권은 항상 주의 깊게 보관한다. 그걸 잃어버리면 그날은 왠지 운수 없는 날이 되고 마니깐... 동전을 준비하고 가방을 여는데 잘 모셔둔 주차권이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이리 뒤지고 저리 뒤져봐도 몇 개의 하얀 영수증만 보일뿐, 빳빳한 쇼핑센터 주차권은 종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황한 나머지 서비스 센터에 연락을 하려고 발행기에 보이는 자그마한 노란색 ‘Help’ 버튼을 눌렀다. 설상가상으로 몇 분을 기다려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버튼 아래 또박또박 쓰여 있는 숫자들! 시간당 주차요금과 그중에 가장 큰 숫자, 떡하니 $57 가 눈에 띄었다. 주차권을 잃어버리면 57불을 내야 하는 것이었다.


두 시간 정도 머문 쇼핑센터에서 주차비를 57불을 내는 것도 아깝지만, 잘 보관해야 할 주차권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나 자신한테 화가 났다. 오늘 허둥댄다 싶더니 운수가 나쁜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57불을 내기 전에 잃어버린 주차권을 찾아보려고 좀 전에 들렀던 가게들을 가보기로 했다. 처음에 방문한 그 불친절한 여자가 있는 가게를 종종걸음으로 찾아갔다. 별로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을 아쉬워서 찾아가니 머쓱했다. 아까 본 그 여자가 박스를 옮기며 일을 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하던 일을 멈추고 내가 서 있었던 그 계산대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선반에 잘 보관되어 있는 내 주차권을 선뜻 내밀며 겸연쩍어하는 나를 위로하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내가 바닥에 떨어뜨리고 간 주차권을 주워놨다며 친절하게 설명하였다. 아마도 내가 계산중에 주차권을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좀 전에 그녀에게 느꼈던 퉁명스러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를 예의 없고 불친절하다고 단번에 믿어버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그 가게를 빠져나왔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주차권을 손에 든 나는 깃털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반면에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모른다는 말도 한다. 오늘은 이 두가지 경우를 겪은 하루였다. 그녀의 짧은 첫인상을 가지고 그 가게를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뾰족한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고 반면에 그녀의 선행으로 나의 첫인상에 대한 편견은 오해였다는 확신도 가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묵뚝뚝한 성격의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내 기분 탓에 그녀를 불친절하다고 단정 지어버린 게 아니었을까? 가끔 서둘러 사람을 판단해 버리는 경솔함에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떠 올랐다.


첫인상이 조금 아니어도 편견 없이 사람을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어른이 되자며 그녀의 가게에서 다시 찾은 주차권을 기계에 쑤욱 밀어 넣었다. 내 성급한 첫인상의 잣대도 함께...






작가의 이전글 도전합니다, 스텐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