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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Jan 24. 2021

깻잎 부자

해외에 살면 한국 먹거리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간다. 그중에 내가 먹고 자란 싱싱한 우리 농산물 야채들 특히, 애호박, 깻잎, 조선무, 청양고추 등등 구수한 한국음식 맛을 내는 야채들은 찾기가 쉽지 않다. 비슷하게 보여서 요리에 넣어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가 더 많았다.  그 맛은 항상 뭔가 2프로부족함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실하게 그리워했던 게 있다면 바로 깻잎이다. 한국에서 흔하디 흔한 그 깻잎이 여기서는 참 귀하다. 가족들이 모여 삼겹살이라도 먹을양이면 깻잎이 항상 발목을 잡았다. 깻잎 없는 삼겹살은 왠지 단팥 없는 단팥빵이라고나 할까? 느끼한 고기 맛을 딱 잡아줄 만한 야채가 빠지니 삼겹살은 더 이상 매력적인 메뉴로 다가오지 않았다.


간혹 운이 좋으면 한국 마트에서 잘 자란 큼직한 깻잎을 10장 정도에 5불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 온다. 깻잎에 고기를 싸 먹는지 고기에 깻잎을 싸 먹는 건지... 비싼 깻잎 가격 때문에 삼겹살은 식탁의 중앙에서 밀린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인지 깻잎 걱정 없이 삼겹살을 먹는 일은 나의 작은 소망이 되었다. 그 깻잎에 대한 아쉬움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지라 인정 많은 교민들 중 간혹 깻잎 씨앗을 나눠주는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경쟁이라도 하듯 사람들이 달려갔다. 물론 내 차례가 오기는 쉽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깻잎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커지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촌언니는 나와는 달리 텃밭을 엄청 잘 가꾼다. 함께 식사라도 하는 날은 직접 키운 야채들을 싸 준다. 마치 계 탄 날처럼 한아름 야채를 얻어와서 비빔밥도 만들어먹고 고기를 구워 깻잎쌈도 잔뜩 먹는 호화를 누린다. 그날은 언니가 깻잎 씨앗이 든 작은 봉투를 건네며 시간이 될 때 한번 키워보라고 넌지시 얘기했다.  마당 한구석에 무럭무럭 자랄 깻잎들을 생각하며 남편한테 조그맣게 텃밭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깻잎 키우기에만 들떠 있었다.


그 작은 씨앗들을 텃밭에 우수수 뿌리고 나서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지극정성 새싹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그 깜깜한 텃밭에 파릇파릇 새싹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더니 어느 순간 텃밭을 꽉꽉 채울 만큼 자랐다. 올망졸망 자란 아기 깻잎을 보며 세상 뿌듯해 하는데 집에 들른 사촌언니는 내 텃밭을 보더니 한숨을 쉬는 게 아닌가! “어머, 이거 반은 다 뽑아야 해,  솎아줘야 숨을 쉬고 잘 자라거든!”


‘엥? 이렇게 예쁘게 잘 자라는데.. 뽑아야 한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깝게 키운 깻잎을 그것도 반이나 뽑으라는 사촌언니의 말이 미덥지 않기까지 했다. “뽑은 건 부드러우니깐 들기름에 달달 볶아먹음 맛있어!”  언니는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뽑은 새싹을 활용할 수 있는 요리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씨를 뿌리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깻잎 키우기는 생각보다 주도면밀하게 미래도 봐주며 정성을 들여야 했다. 독하게 마음을 먹고 작은 새싹들을 뿌리까지 쑥쑥 뽑아내고선 들기름에 살살 볶아 저녁 밥상에 내었다. 집안에 깻잎 향이 솔솔 퍼지는 게 조만간 깻잎 부자에 등극할 거 같은 벅참이 차 올랐다.


빡빡했던 깻잎 텃밭에 공간을 만들어주니 공기도 잘 통하고 숨을 쉴 수 있는지 깻잎 줄기가 더 굵어지고 잎도 커지기 시작했다. 깻잎사귀가 커지는 기쁨도 잠시 아침마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잎사귀를 보며 애벌레와 민달팽이 잡기위한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깐... 밤새 잘 자라야 할 깻잎들이 여기저기 뜯겨 엉망이 된 것을 보는 순간 속상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마치 자식이 어디라도 다쳐서 올 때 느끼는 엄마의 마음이랄까? 식물한테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망가진 깻잎들을 샅샅이 뒤져 애벌레를 족집게로 수없이 잡아내고 달팽이를 없애기 위해 식초를 뿌리고 커피가루를 뿌리며 소중한 깻잎을 지켜나갔다. 게다가 행여나 햇볕이 강한 날은 잎사귀가 타들어갈까 양산이라도 받쳐주고 싶은 심정으로 깻잎을 키웠다.


그렇게 지킨 작은 텃밭의 깻잎 푸른 잎사귀들이 너풀거리는 모습은 농사의 즐거운 순간들 또한 선사해 주었다.

집에 깻잎을 심어놓은 자는 삼겹살을 사는 자세도 다르다. 위풍당당 삼겹살을 사러 가고 아낌없이 깻잎을 손에 올려 고기를 척척 싸 먹는 여유까지 생긴다. 게다가 수북이 딴 깻잎으로는 깻잎김치를 담그는 커다란 배포까지 생긴다. 따뜻한 밥 한 그릇에 잘 저려진 깻잎김치 한 장이면 다른 반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게다가 스멀스멀 꽃대가 올라오면 기다렸다가 툭툭 잘라내어 밀가루 살살 무쳐 튀기면 깻잎 꽃대 튀김까지 먹을 수 있다. 입안에서 톡톡 터치는 고소한 들깨 씨앗은 꽃대 튀김의 완성이다.


수고스럽지만 그리운 고향 밥상을 고스란히 내어주는 행복감 주는 깻잎 농사를 어느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지금은 텃밭이 쉬고 있다. 몇 년 동안 깻잎을 재밌게 키우고 이제는 깻잎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키울 수 있는 씨앗도 잔뜩 모아 두었다.


생각해보면 좌충우돌 깻잎 농사로 얻은 건 한국을 그리워하는 고향의 맛이었던 거 같다. 할머니 살아생전에 보글보글 된장찌개와 함께 내어 주시던 당근송송 들어갔던 맛깔스러운 깻잎김치, 조림 여왕 엄마의 자랑인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게 하는 향긋한 깻잎조림, 가족들과 옹기종기 먹었던 삼겹살과 깻잎쌈은 항상 내 기억 속에 맛있는 거 이상의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이다.


이민자 밥상에 쉽게 오르지 못했던 그 깻잎을 키워먹는 나는 감히 깻잎 부자라고 배짱 있게 말하고 싶다.













사진:픽사 베이/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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