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딩턴 Feb 16. 2021

신경 덜 쓰기 연습

시간을 많이 들여 사 온 물건은 설렘을 준다. 예뻐서 내 맘에 쏙 들어서 자꾸 요리조리 뜯어보다 보면 차라리 안 보였음 하는 걸  발견할 때가 있다. 옥에 티처럼! 꽤 신경 써서 사 온 물건인데도 가끔은 작은 흠집이 눈에 띄어 갑자기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아, 이걸 못 봤네.. 두 개 중에 그걸 샀어야 하는데..’ 후회와 반성을 동시에 하며 당장 바꿔야 한다는 마음이 훅 든다. 바로 시계를 보고 가게문을 닫을 시간이 아니면 곧장 달려간다. 시간을 더 지체했다가는 남은 물건이 다 팔려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사람 보는 눈은 비슷비슷해서 내가 예쁘면 남도 예쁘게 보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티 하나 없이 완벽한 것으로 바꿔오기도 하고 반면, 안타깝게 품절이 되거나 혹은 그보다 못한 것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애매모호한 확률 게임을 하면서도 부리나케 달려가는 이유는 약간의 흠이 있는 물건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까칠한 마음인 듯하다.


지난번 큰 세일을 할 때였다. 그릇가게에서 맘에 딱 들어 사 온 큰 접시에 자그마한 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아주 자세히 보면 티가 나고 신경 안 쓰고 보면 잘 보이지 않는 정도였다. ‘왜 굳이 또 눈에 띄인 걸까??’ 속으로 긴 한숨을 쉬고 있는데 벌써 내 표정이 굳어지는 걸 눈치챈 남편은 ‘에휴 또 달려가겠군.’ 하는 얼굴로 한마디를 거들었다.


“사 온 물건들이 매번 완벽할 수는 없잖아! 한번 이렇게 생각해봐. 그 접시가 당신에게 운명처럼 왔다고..”  


후다닥 자동차 키를 집어 드는 나를 보며 그는 안쓰럽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무슨 운명 같은 소리... 돈 주고 샀는데 제대로 된 걸 사야지!” 날카롭게 대꾸를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칫해지는 걸 느꼈다. 그의 말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작은 흠이라도 발견되면 초조해지는 나를 느꼈다. 갑자기 피곤이 확 밀려왔다.


‘차로 다녀오면 왕복 1시간의 거리, 게다가 이 접시가 다 팔렸음 어떡하지? 하나밖에 안 남았었는데... 차라리 환불을 할까 아님 다른 걸로 바꿀까?’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다가 문득 신경을 꺼버리고 싶었다.  ‘음식 담으면 보이지도 않는데... 그릇이 뭐 이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 거기서 거기지... 아,, 귀찮아..’  생각의 전환이 바쁜 마음을 달래는 중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모든 게 완벽할 수 있을까?  그릇 하나 사는데  너무 예민한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연습이 필요한 때라고 느꼈다.


조급한 나와 여유로운 나는 생각의 리듬에 따라 움직였다. 내 리듬이 빨라지면 안달복달 급해지고 내 생각이 느리고 편안하면 수용과 타협을 만들어냈다. 물론 낯선 새물건을 집으로 들이는 것은 가끔은 긴장감을 준다. 더구나 돈을 많이 지불한 것들에 대해서는 좀 더 까다로워지는 건 사실이다.


행여라도 새로 산 물건에 약간의 흠이 발견되어도 아주 불량품이 아니고서는 남편 말대로 가끔은 운명적으로 받아들여 보려 한다.  운명적으로 나에게 온 것, 조금 못생겨도 모자라도 받아주는 거..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새 물건을 대하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나의 시절물건이 된다 생각하면 약간의 티가 발견되어도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여유가 분명 생길 테니깐.  다소 게으름도 피워본다. ‘뭐 어차피 쓰면 낡을걸,,’ 이걸 누가 뭐라고 그래!’


접시 뒤에 붙은 택을 과감히 떼어내며 남아있던 내 신경도 함께 꺼 버리니 오롯이 내 것이 되었다.

신경 끈 내 예쁜 접시









제목 사진: 픽사 베이






작가의 이전글 깻잎 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