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텐팬 길들이기
주방용품 중에 유일하게 몇 달을 못 버티고 자주 바꾸게 되는 것은 프라이팬이다. 우리 집 프라이팬의 정체는 길들이면 평생 함께한다는 무쇠도 아니요, 반들반들 스테인리스 팬도 아니요 바로 휘뚜루마뚜루 쓰는 코팅팬이다. 코팅 팬의 편리함은 너무 잘 알지만 맘 한구석에는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코팅이 벗겨져 요리한 음식과 함께 먹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달고 산다. 코팅팬을 사용하다 약간의 스크레치라도 발견하면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달려가서 또 코팅 팬을 사 온다. 마치 코팅팬의 블랙홀에 갇혀 계속 코팅팬을 사듯이. 게다가 코팅 팬의 신뢰도는 가격인가 싶어서 다른 저렴이보다 꽤 비싼 것으로 집어오지만 내 맘에 쏙 들게 정을 오래 붙이고 사용할 수 있는 프라이 팬은 아직도 찾지를 못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쇼핑 끝에 단연 50퍼센트나 세일을 하는 스텐팬을 과감하게 사 들고 왔다. 넘지 못할 코팅팬의 한계에 다다른 듯 큰 맘먹고 도전정신으로 산 것이 스텐팬이다. 안과 밖이 반짝반짝 광이 나는 것이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예전에 몇 번의 시도 끝에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을 떠 올리며 또다시 KO 당하기 전에 어서 빨리 친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유튜브를 계속 돌려가며 팬을 제대로 쓸 생각에 한껏 부풀어있었다. 팬 안쪽에 남아있는 연마제를 몇 번을 반복해서 닦아내며 긴가민가 미심쩍은 마음을 지웠다. 한번 잘 길 들이면 벗겨질 걱정 없이 평생 쓴다는 스텐팬의 매력에 빠지기라도 한 듯, 이제 곧 내 주방을 환하게 빛낼 이 스텐팬에 잔뜩 기대를 했다.
처음 떨리는 시도는 달걀 프라이부터 해 보기로 했다. 까다롭다 하는 스텐팬을 시험하기에 최소의 에너지를 쓰고 실망감도 그만큼 적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생각이었다.
**스텐팬 위에서 매끌매끌 스케이트 타는 달걀 프라이 만들기 도전
(달걀은 냉장고에서 꺼내 실온에서 10여분을 둔다/ 주의: 너무 차가울 경우 팬에 달라붙을 수 있다.)
1. 스텐팬을 스토브에 얹어 달군다. (불길이 팬의 바닥의 지름을 넘지 않도록)
2. 물을 살짝 뿌려보아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물방울이 보이면 준비 끝.( 일명 머큐리 볼이 만들어져야 함)
3. 불을 끄고 잠시 나둔다.(식힌다는 의미로 해석)
4. 팬에 기름을 두른다. (이때 기름이 그물 모양으로 보인다.)
5. 그리고 달걀을 깨뜨려 넣는다.
6. 가스불을 아주 낮춰 놓고 조리한다.
7. 이때 달걀 프라이가 스르르 미끄러지며 조리가 되면 성공! 만약 달걀 프라이가 뒤집어지지 않고 달라붙으면 실패! (불 조절 실패 혹은 오일 코팅 실패)
완벽한 이론을 백 프로 숙지한 채, 아쉽게도 나의 첫 도전 달걀 프라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깨어 넣은 달걀은 ‘치이이이’ 흥겨운 소리를 팬 위에서 내는가 싶더니 결국에는 삼분의 이는 스펜팬이 다 먹어치운 듯 허탈한 느낌을 주었다. 팬을 박박 긁어 부스러기 달걀 프라이를 건졌다. 이런 나를 지켜보느라 남편과 딸은 다 식어빠진 커피와 토스트를 앞에 두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참한 모양새의 달걀 프라이를 식탁에 내어 놓으니 다들 웃는다. 나도 머쓱해서 웃었다. “ 다들 처음에 이렇데..” 주방 살림에 대해선 고수가 되어야 할 나이의 내가 할 소리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나의 맘속에는 도전 과제라는 명백한 동기가 생기고 있었다. 사실상 오기였다.
남은 달걀을 다 쓰기로 작정하고 다시 시작했다. 팬을 잘 닦고 처음부터 시작했다. 우는 아이 달래듯 조심조심하며 마침내 스텐팬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느낌 좋은 달걀 프라이를 드디어 완성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 이거 봐! 해냈어..” 남편은 달려와 잘했다며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 근데 달걀 프라이에 너무 시간 쓰면서 스트레스받는 거 아냐?” 갱년기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행여나 스텐팬이 스트레스의 도화선이 될까 조심히 얘기했다. “아냐 아냐. 이 프라이팬이 훨씬 건강에 좋데. 앞으로 모든 요리는 여기다 할 거야!” 자신감 있게 얘기하고는 이 완벽한 완성의 타이밍을 놓칠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이후 아침식사의 달걀 프라이는 기본 두배 이상의 시간을 쏟아야 했다. 예열하고 기다리고 눈치 보고. 스텐팬에서 하는 달걀프라이는 아직도 나에게 도전장을 자꾸 들이민다. 성공했다 실패했다 여전히 반복 중이다. 내 옆에 두고 믿음직스러워야 할 스텐팬은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듯 야속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길들여서 나와의 호흡을 맞추게 하는 것, 시간과 노력을 참으로 쏟아부어야 이룰 수 있는 듯하다. 하물며 작은 주방용품 하나일지라도 시행착오를 거쳐서 배우고 연습하고 익혀야 하니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내 곁에 두고 손때 묻고 익숙해진 것들을 생각하면 알게 모르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숨은 열정과 노력이 만든 것임을 가끔은 잊고 산다. 처음에 쉽게 포기하고 말았더라면 여전히 생소한 채, 나의 첫 스텐팬의 낯선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스텐팬, 이번엔 포기하지 않고 너를 꼭 내 주방 메인 자리에 놓으리라! 펜을 들어 올해의 다이어리 성취 목록에 슬그머니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