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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곰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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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Jul 16. 2021

돌봄

어제 함께 일하던 동료 교사가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났다. 나보다 한참 어리고 경력이 짧아도 배려심과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한국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내 김치볶음밥을 자주 맛있게 먹어주던 동료이다.  


지난달, 나에게 조용히 오더니 잡 레퍼런스를 부탁했다. 대학공부를 마쳐야 하는 그녀는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시간과 싸우며 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모습이 어쩌면 나의 이십 대와 닮아 있기도 하고 용기 있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배짱도 내게는 멋져 보였다. 나는 디렉터 모르게 그녀의 레퍼런스에 선뜻 응하고 말았다. 그녀의 건투를 빌며…


그러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의 새로운 직장 상사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레퍼런스 체크업 때문에 통화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어필할 수 있는 그녀의 장점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해나갔다. 사람을 누구에게 추천해주는 일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그게 직장인 경우는 더하다.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고 자신감 있게 그녀를 추천해 주고 나니 맘이 한결 가벼웠다.  


진심 어린 내 말이 닿았는지, 그녀는 새로운 직장에 좋은 조건으로 취직이 되었고 우리 둘 만이 아는 비밀은 마지막 날까지 잘 지켜졌다. 더 이상 함께 일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고 슬프지만, 그녀의 선택에 힘과 응원을 해 주는 선배교사가 되고 싶었다.


지금의 디렉터는 그녀의 뜬금없는 퇴사 소식에 황당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모르쇠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퇴사 날 아침, 일찍 출근하여 커피를 만들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묵직한 봉투 하나를 들이밀었다. 자기를 응원해 줘서 너무 고맙다며 예쁜 화분 하나를 선물해 주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너무 고마워! 그나저나 너무 예쁘다!” 겸연쩍게 봉투를 받아 들며 얘기하고 있었다. “예쁘지? 제발 죽이지는 마 ㅎㅎ”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말하였다.


화초를 그다지 잘 키우지 못하는 나로서는 조금은 부담 가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녀처럼 용기 있게 이 예쁜 식물을 키울 자신감을 보였다. “걱정 마, 나 화초 잘 키워! 믿어봐~” 이렇게 허세를 부리면서 머쓱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나에게 감사의 화분 하나를 안겨주고 떠났다. 평소 말이 별로 없고 조용한 그녀는 나름 나의 관심과 응원이 고마웠었나 보다. 가끔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풀 때가 있다. 혼자 사는 그녀에게 김치볶음밥과 김치부침개를  남몰래 냉장고에 넣어주는 마음을 알아차려서일까?    챙겨 먹으라면 말에 그녀는 울컥 눈물을 보였다.


사람을 돌보는 것, 작은 관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어쩌면 거창하게 생색내지 않아도 할 수 있다. 내가 밥을 먹을 때 숟가락 하나 더 얹어주는 것도 돌봄이요, 내가 커피를 만들 때 수고하는 누군가를 위해 한잔을 더 내리는 것도 돌봄인 것이다.


아끼던 동료와 함께 하던 시간이 그립겠지만, 그녀의 미래를 응원하며 또 다른 초록색 돌봄이 시작될 듯하다!

이번엔 잘 자라주렴~

동료가 준 화초!






사진출처: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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