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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Sep 25. 2020

의자에 대한 단상

인심은 의자로 쓰세요

2년 전 , 홍콩에서 휴가로 며칠을 머문 적이 있다. 빼곡한 빌딩 숲에 어디를 가나 분주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홍콩 시내에서 나름 큰 쇼핑센터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거기는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아주 모던한 건물이었다. 크고 반짝반짝한 대리석 바닥이 쫘악 깔려있고 화려한 샵들과 유명한 식당들이 즐비했다. 세련된 홍콩의 모습이 여기 다 있는 듯했다.


우리는 상점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밥도 먹고 그 유명한 응커피에서 테이크어웨이 커피를 샀다. 그 카페는 테이블이 없는 곳이라 커피를 받자마자 나와야 했다. 이 커다란 쇼핑센터에서 테이크어웨이만 된다고? 뭐 워낙 물가가 비싼 곳이니 하며 인정했다.

그런 커피를 들고 잠시 쉴 곳을 찾았다. 쇼핑센터에 으레 몇 군데 정도 있을법한 소파나 벤치를 찾았다. 없었다. 전혀 없었다. 나는 이게 실화인가 싶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너무 놀라웠다.


물론 내가 가본 이곳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큰 쇼핑센터에 앉을 의자 하나 없는 게 좀 야속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의자 찾아다니다 지친 우리는 그냥 호텔로 가는 택시에 올라탔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나는 의자를 내어주는 쇼핑센터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는지 모른다. 내가 사는 호주는 의자 인심이 후한 편이다. 어디를 가도 앉을 곳이 있다. 걷다가 앉아서 쉬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을 가진 적은 별로 없었던 거 같다.


내가 자주 가는 이곳의 큰 쇼핑센터는 친구도 만나서 밥도 먹고 쇼핑도 하는 백화점 같은 곳이다. 물론 화려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곳이다. 여기는 군데군데 그것도 가죽이나 벨벳으로 되어있는 커다란 소파들이 있다. 한번 앉으면 일어나기 싫을 때도 있다. 그만큼 편하다. 가끔 그 넓은 쇼핑센터를 다니다 다리가 아프거나 쉬고 싶을 때 잠깐 앉아가는 곳이다. 물론 많은 아빠들, 남편들이 아이들 데리고 지름신 내린 엄마들을 기다리는 곳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 소파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어도 그런 쉼의 공간이 있는 것은 쇼핑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할 수 있고, 또 내가 힘들면 언제든지 쉬어갈 수 있다는 여유로움을 주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의도의 쉼을 제공하는 것도 마케팅의 일환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홍콩의 그렇게 큰 쇼핑센터에 쉬어갈 의자가 없다는 것은 너무 상업주의 위주의 생각이 만든 차가움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쇼핑도 사람이 하는 거고, 공간도 사람이 행복하게 머물러야 그곳이 빛을 발하니 말이다.


난 어릴 적, 부모님이랑 남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 우리에게 의자를 가리키며 “ 여기 앉아요”라고 말하는 미덕이 참 고마웠다.  자기 집을 찾은 사람한테 내가 갖고 있는 의자를 내어주는 것은 긴 걸음 한 손님에 대한 따뜻한 태도이다.


뭐든 빨리빨리 초고속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친 여행객인 우리에게 쉼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 기억의 공간은, 사람이 머물기는 너무 딱딱하단 느낌이 드는 것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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