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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Sep 23. 2020

곱창밴드는 돌고 돈다

짜투래기 천의 변신

코로나 때문에 마땅히 나갈 데도 없고 심심한 찰나에 옷장을 정리하다가 서랍장에서 고스란히 모아둔 조각 천들을 찾아냈다. 예전에 가끔 하던 퀼트의 흔적들이다. 이 조각 천 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던 중, 요즘 곱창 밴드가 유행인지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동영상들이 꽤 보였다.


곱창 밴드, 그게 언제적 유물인가? 아주 오래전, 대학 때 오며 가며 사모으던 것으로 꽤 오래된 유행 아이템인 게 분명하다. 내가 기억하는 그 유물은 형형색색의 실크부터 벨벳까지 다양한 천에 금장식, 은장식 등 별별 곱창 밴드들이 순간 머리를 스쳐갔다.


그런 화려한 곱창 밴드들을 뒤로하고 내가 만난 호주 사람들은 다 까만 머리끈 일색이었다. 그것도 보일락 말락 하는 가는 머리끈이 다였다. 색깔 있는 끈을 한 사람도 별로 없었다. 다소 재미없는 듯 보였지만, 그들은 잘 끊어지기도 하는 그 고무줄 머리끈을 한두 개씩 손목에 두르고 다녔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검은 머리끈으로 산지  10여 년이 훨씬 지났는데... 이제야 머리끈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게 곱창 밴드(영어로는 스크런치)인 것이다.  지금은 액세서리 샵들마다 색색의 곱창밴드들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다. 길가는 젊은 여자들은 다양한 색깔의 곱창밴드를 하고 다닌다. 여기도 유행이다.


이제야 우리의 고전, 곱창 머리끈이 빛을 발할 때란 말인가? 난 너무 반가웠다. 이럴 거면, 곱창밴드의 향수를 내가 불러일으킬걸 하며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부랴부랴 내 화장대 서랍을 열어서 고이 간직해둔 나의 오래된 곱창 밴드를 찾았다. 그걸 머리에 돌돌 묶으면서, 그 예전 겨울밤에 명동의 길거리가 생각났다. 친구들이랑 머리 맞대고 가판대에 서서 서로 골라주며 히히 호호하던 때 말이다. 그 가판대에 자그맣게 켜져 있던 불빛과 그때의 차가웠던 공기가 내 곱창밴드로  들어왔다.


나는 재봉틀을 꺼내 내 예쁜 천들을 활용해 곱창 밴드를 더듬더듬 만들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쉽지는 않았다. 옛날 천으로 옛날 곱창밴드를 만드니 감회가 새로웠다. 천을 재단하고 사각으로 잘라서 잘 이어 붙였다. 그리고 뒤집어 고무줄을 넣어서 동그랗게 이어 주니, 손목에 쏙 들어가는 곱창 밴드가 완성되었다. 고무줄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박음질을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도넛 모양으로 드디어 탄생한 곱창밴드. 손목에도 껴보고 머리도 예쁘게 묶어보고 새로운 내 곱창밴드가 맘에 들었다. 한참 하고 다닐 거 같았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패션은 20년마다 돈다는 흔한 말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결국, 과거의 향수가 그리워서 누군가 시작한 게 다시 유행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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