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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곰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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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Nov 21. 2021

기억이 찾아가는 향기

몇 달 전 코로나로 봉쇄령(이동제한)이 내려지기 전의 일이다. 수개월의 실습을 끝낸 학생이 수줍게 내민 손에는 헝겊 주머니에 담긴 핸드크림이 들어있었다. 학생들이 머물다 간 자리는 가끔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사회에 나가기 직전, 야심 찬 열정과 성의를 다해 자신을 보여주면서 애쓰는 모습에 그 시절 내가 투영되기도 하고 또 시행착오를 겪어내는 것을 오롯이 보면서 안타깝지만도 꼭 해 줘야 하는 질책의 말들을 건네기도 한다. 한 달이던 두 달이던 함께 했던 공간에서 그들이 사라지면 섭섭함도 남는다.


그녀가 건네준 고마운 핸드크림은 귤향기가 나는 꽤나 유명한 브랜드의 상품이었다.  집에 가져오는 내내 나의 후각을 매료시키는 묘한 향기는 그 핸드크림이 담긴 자그마한 헝겊 가방에서 나는 향이었다. 약간의 숲 냄새도 나면서 가끔 꽃냄새도 나는 아주 신비로운 향이었다. 자꾸 맡고 싶은 기분 좋은 향을 만나니 설렘이 가득해져 화장대 옆에 살포시 걸어두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향기로 행복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니 안타깝게도 그 향은 점점 옅어져 갔다. 놓치고 싶지 않은 향기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지만 아쉽게도 그날 저녁 내가 사는 멜버른에는 코로나 봉쇄령이 내려져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그 가게가 문을 닫은 것이다!  나의 행복 향기는 아주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한 번쯤 이끌렸던 향을 기억하는 방법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 향기가 머무는 공간 그리고 그날의 분위기 모든 것들이 향을 기억해 내는 방법이다. 무려 3개월이나 되는 봉쇄령 동안 꼭 기억하고 싶었던 향기를 더듬어 찾아내는 방법은 이미 쉽지 않을 거라 예견되고 있었다.


어렵사리 봉쇄령이 풀린 다음날, 작정이라도 한 듯 퇴근후 그 핸드크림을 파는 샵으로 달려갔다. 머릿속에는 어떻게 그 향을 설명할 수 있을까? 저렇게 많은 상품중에서 내가 과연 그 향기를 기억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으로 가게의 문을 두드렸다. 수많은 상품들이 압도하는 그 곳에서 희망의 단어가 무색해지고 있었다.

‘편안한 향기를 찾습니다!’ 라고 읊조리며 장황한 내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점원은 성의를 다해서 향수를 찾아주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여러 개를 맡아보니, 거기서 거기인 듯,, 내 후각은 이미 피로해져서 갈길을 잃은 듯했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3개월의 시간에 내 기억도 후각도 흐려진 것이었다.

“그냥 이번 여름에 잘 쓸 수 있는 이 걸로 할게요!” 거의 포기한 상태로 내 선택에 자신은  없었지만, 미안함 마음에 향수 하나를 집어 들고 말았다.

“네,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철이 지나긴 했지만,, 가을 겨울에 잘 쓰시는 이 장미향이 나는 이 거 한번 맡아보시겠어요?” 그녀가 건넌 향수를 집어 들고는 대수롭지 않게 코를 들이대었다. 천천히 묵직하고 편안한 향이 코로 쑤욱 들어왔다. 마음에 편해지는 순간 미소가 나도 모르게 퍼져 나오는 걸 느꼈다. 그 향을 찾았다…


내가 찾는 향은 비를 머금은 차가운 날의 장미향이었던 것이다. 그 학생이 머물렀던 때도 낙엽이 젖고 습습한 마당 냄새가 났던 그때였던 거 같다.

내가 기억하는 향은 계절도 사람도 있었다.

땅의 냄새가 나니 자연의 편안함이 느껴진 것이고, 비가 와서 촉촉한 장미향은 꽃을 좋아하는 나를 행복하게 했던 거 같다.

우리 모두는 많은 향기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잊고 싶지 않은 향기를 기억하는 방법,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까?

우연히 만난다면 꼭 잡고 싶은 향기가 우리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었으면 한다.


지금 내방 한편에는 꽤 오랫동안 미약해져 가는 향을 쫓아 의식의 기억으로만 데려온 그 향기 덩어리가 거만하게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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