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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곰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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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Jan 04. 2022

책 읽는 이웃

우리 집 주방에서 내다보면 옆집의 뒷마당이 살짝 보인다.  가끔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그 집 아저씨는 그곳 작은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설거지에 집중한 채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생각없이 한동안 내다가 멈칫한다. 행여나 내가 내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방해가 될까 봐 창문을 닫고 조심스레 한 템포 느리게 그릇을 다룬다. 이웃의 조용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이 또 하나 있다. 조용한 이웃 부부가 이사 오기 전에는 아이를 키우던 소란스런 부부가 살았다. 가끔가다 한 번씩 마당에서 아이들과 놀아줄 때는 동네가 떠나가라 시끄러웠다. 조용한 나의 휴식시간을 방해받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된다.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다가 흠칫 놀라고 고요한 시간에 침입해 오는 소음은 언제나 환영받지 못했다. 그 이웃이 살 적엔 설거지를 조심스레 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불편한 마음에 창문을 쾅하고 몇 번 닫았던 기억도 문득 난다. 배려 없는 이웃에게 존중이란 말이 무의미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들이 떠나고 이사 온 이 조용한 부부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나도 그들의 시간을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웃이 선택한 조용한 시간을 우리는 얼마큼 존중하고 살고 있을까?


예전에 이시형 박사가 티브이에 나와서 한말이 문득 생각났다. 1월 1일이 되면 차오르는 태양을 보겠다고 새벽부터 여기저기 등산객이 붐빈다. 너도나도 붉게 떠오르는 태양에 그해에 담을 소망을 심어서 야심 차게 ‘야호’를  외치기 시작한다. 지인과 함께 산에 오르기로 한 이시형 박사는 산에 오르기 전에 이렇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신이 나서 해돋이를 보고 ‘야호’를 외치지만 곤히 자고 있는 산짐승을 깨울 권리는 없지 않소? 이 고요하고 깊은 산 정상에서 짐승들을 깨우지 말고 조용히 해돋이를 보고 갑시다!”  지인을 고개를 끄덕이며, ‘야호’를 외치는 대신 벅차오르는 해돋이를 곱게 감상만 했다는 일화를 들었다. 산짐승을 깨울 권리를 어느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는 메세지다! 사람들의 무수한 발걸음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던 동물들이 사는 세상을 존중이라는 시선으로 본 적이 없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존중이라는 것은 꼭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삶이 흐르는 곳, 시간이 머무는 곳을 최대한 배려하려 하는 것도 존중이다. 하물며 남모르는 이웃지간에도 눈치 채 버린 그들의 시간이 있다. 그때 존중이라는 시선을 마주한다면 서로가 기분 좋은 이웃이 되지 않을까?


 읽는 이웃을  나는 오늘도 조심스레 설거지를 한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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