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딩턴 Oct 05. 2020

등 푸른 너

고등어

나는 루시드 폴의 ‘고등어’를 듣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동한다. 가사 하나하나를 고등어 전지적 시점으로 써 나간 것이 고등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구구절절 가슴이 애인다. 그중에서 나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구절은 이것이다.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 줘요. 나는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여, 나를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하루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배부른 밥상을 내어주겠다는 고등어의 철학이 있어서이다.


어린 시절 엄마랑 시장에 가면, 자주 들르던 생선가게에는 신선한 생선들이 참 많았다.  여러 생선 중에서도 푸른색의 물결무늬에 반들반들 통통한 뱃살을 가지고 있는 고등어는 단연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날의 밥상 메뉴였던 거 같다. 동그란 눈을 감지 않고 있는 고등어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던 나는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다는 생물학적 지식을 일찍 알게 되었던거 같다. 엄마가 시장에서 흥정을 하기 시작하면 나는 멀뚱멀뚱 다른 곳을 보며 그날의 분위기를 점쳐보았다. 엄마의 야무진 생선값 깎기 전략은 웬만하면 빗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검정 비닐 속에 고등어 몇 마리는 항상 엄마의 승전고로 그날의 저녁밥상에 올라와 있었다. 가끔은 노릇노릇 기름기 좔좔 흐르는 구이로 가끔은 푹 익은 무와 함께 매콤한 조림으로 항상 우리 집 밥상에 환영을 받았었다.


나는 고등어를 좋아한다. 고등어가 있었던 밥상들은 따뜻했다. 엄마가 끓여준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그래서 고등어를 생각하면 가족이 떠오른다. 여기 내가 사는 곳은 밥상에 올릴 생선이 많이 한정적이다. 한국에서 자주 먹었던 고등어는 당연히 없었다. 생선가게마다 신선하게 손질되어 있는 생선들 사이에 언뜻 보이는 고등어는 초라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별로 인기가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보던 튼실한 통통한 바다에서 갓 잡은 그런 고등어는 없었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두세 마리 집으로 가져와서 소금을 치고 굽기 시작하면, 집안에 퍼지는 고등어의 냄새는 내가 추억하는 짭자롬하고 고소한 그 냄새는 아니었다. 고등어 사기는 이미 포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등어가 나의 밥상에서 멀어진 지 수년 동안 나는 고등어의 아쉬움을 아마도 호주의 소고기로 달래고 있었나 보다.


요사이 한국 생선들이 냉동으로 들어오는지 한국 슈퍼에서도 제법 많이 보인다. 물론 고등어도 있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비닐에 갓 잡은 그대로 포장되어 있는 게 내가 한국에서 보던 모습과 아주 가깝다. 내가 자주 먹었던 그 고등어를 여기서 먹을 수 있다니 나의 밥상이 풍요로울 생각에 들떴었다. 그렇게 고등어를 다시 굽고 조리고 나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맛도 아주 흡사하다. 비록 아쉬운 마음에 지금은 냉동 고등어에 의지하고 있지만, 난  왁자지껄 사람 냄새나는 시장에서 고등어를 사고 싶다. 루시드폴의 가사처럼 수고한 하루 끝에 싱싱한 고등어를 골라 가족의 행복한 밥상으로 데려가고프다.





사진출처: 픽사 베이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5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