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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Oct 13. 2020

화장지 쇼크

코로나로 인해 휴지 대란이 일어났던 이 곳에서 나는 이기주의의 단면을 보았다. 사람들은 자기 집에 화장지를 쌓아두고 또 사러 다녔다. 왜? 불안하니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마스크를 만드는 공장에서 제지회사에 공급하는 재료를 다 가져다 쓴다고 했다. 어찌 보면, 있을 수도 있는 얘기지만 그런 무성한 루머만이 돌고 있었다. 설마 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을 때쯤은 항상 현실에 맞닥뜨릴 때였다. 떨어져 가는 두루마리 휴지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모두가 만나면 두루마리 휴지 소동에 광분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고 어이없다고 얘기하고선 다들 마트로  달려갔다. 물론 나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화장지 찾아 삼만리를 했으니 말이다.


따져보면 별로 신경 안 쓰고 떨어질 걱정 없이 쓰던 휴지인데, 이 난리통에 하루 종일 화장지 생각뿐이었다. 휴지만 판다면 어디든지 갈 태세였다. 사재기를 우려해 고작 10개밖에 못 산다 하니 더 사고 싶어 지는 이 묘한 심리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패닉 했고 싸움을 하면서까지 남은 한팩을 사고 마는 천태만상이 벌어졌다.


휴지계의 가장 천덕꾸러기 역을  도맡았던 두루마리 화장지. 화려한 곽티슈들에 가려져 빛을 볼 기회가 없었던 두루마리 화장지의 재조명은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 씁쓸함을 안겨 주었다.  이 화장지를 손에 얻은 사람은 당당하게 마트를 빠져나갔고, 자랑스럽게 가슴에 안고선 버스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지 못한 자의 뒷모습은 정말 처량하기까지 했다. 인생에서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고작 두루마리 화장지에 사생결단이 나듯 달려들고 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현실이었다.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 들락날락하며 불안감을 주고 있다. 남은 휴지의 갯수를 염려하며 초조하게 지냈던 때가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다행히도 폭풍전야 같던 그 사재기의 바람은 가라앉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마트의 어디를 가나 천정 가까이 쌓여있는 화장지들을 볼 수 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 당시의 불안감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안도감으로 바뀌는 이중 기분을 경험하고 돌아온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며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이라 생각된다. 사재기로부터 감지한 불안 바이러스에서는 일단 살아남았고 동시에 조금은 이기적인 우리의 자화상도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걱정, 초조 그리고 불안 바이러스를 멀리 할 수 있는 정신의 면역은 키웠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 어지러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데 위로의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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