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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Oct 09. 2020

행운목의 꽃을 자르다

우리 집에 가장 오래된 화분이 하나 있다. 행운목이다. 7-8년이 된 몇 개 안 되는 화분 중에 나름 터줏대감이다. 2013년 초여름쯤, 주말에 벼룩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사오게 되었다. 화분을 팔던 아저씨는 아주 싸게 사는 거라며, 운이 좋으면 곧 꽃을 볼 수도 있을 거란 한마디를 건넸다. 으레 장삿속으로 하는 소리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집으로 가지고 왔다. 행운목을 키워 본 적 없는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묵묵히 거실 한편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은근 행운이 따르는 일들이 생겨나길 마음속으로 바래보기도 했다. 왜? 행운목이니깐.


몇 달이 지난 후, 거실 어디선가 몽글몽글 꽃내음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창밖 너머 들어오는 향인 줄 알고 지나치다가 행운목 윗부분에 꽃대가 솟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설마 했는데  하얀색의 꽃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7년 만에 필까 말까 한다는 그 꽃이었다. 경사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행운목의 꽃을 본 사람은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행운을 만나다고 하니 이 귀한 꽃을 어떻게 대접해 줘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내 귀는 팔랑거리며 증명되지 않은 희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행여 꽃봉오리가 더디 열릴까 온도를 신경 쓰고 환기도 자주 시켜주면서 그 반가운 행운목의 꽃이 피는 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열심히 피거라 주문을 걸면서 말이다. 게다가 그 꽃향기는 얼마나 진한지 집안에 온통 꽃냄새가 가득이었다. 흥분한 나머지, 올라오는 꽃대에 코를 들이대고 킁킁 꽃향기를 맡으며 7년 만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려보자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밤부터 재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두 번으로 시작을 하더니 아예 눈물 콧물까지 멈출 줄 모르고 정신없이 흘러나왔다. 며칠을 고생을 하다가 병원에 다녀온 결과, 나에게 인생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꽃알레르기가 생긴 걸 알게 되었다. 그것도 7년에 한 번 핀다는 행운목 꽃으로 말이다.  


약을 먹으면 나아질 거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꽤 고통스럽게 지내야만 했다. 거실 한켠에 두었는데도 하루 종일 그 꽃향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행운목을 밖에 내놓기로 했다. 그것도 잠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꽃향기는 집안을 다 감싸고 밖에서도 향을 계속 내뿜고 있었다. 그 신비롭고 고귀했던 행운목의 꽃은 나한테 더 이상 아름답지도 귀하지도 않은 존재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가위를 들어야만 했다. 7년 만에 숨죽이다 피어오르는 꽃을 싹둑싹둑 잘라내었다. 행운목에 가늘게 연결되어 있는 꽃 산소통을 자르는 느낌이었다. 행운목한테 못할 짓이었다. 마음은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 꽃들이 없어야 내가 살 거 같았다. 꽃향기 없이 숨 쉬고 싶은 절박함이 밀려왔다. 그러고선 하루 이틀 지나니 내 알레르기는 신기하게도 수그러지면 일상의 평화가 찾아왔다.


꽃도 많고 나무도 많은 이곳에서 왜 하필 행운목 꽃이어야만 했을까.. 그러면서 내려놓지 않으면 불편한 것들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귀한 것인들 내가 즐기기 못하면 그것은 평범한 것 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가위를 대고 나니 그 특별한 행운목은 그냥 공기정화에 좋은 식물이 되었다. 안달복달하며 꽃이 피네마네 신경안 쓰니 편해졌다. 아무리 귀한 꽃인들 내 곁에 둘 수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그것이 어떤 행운을 가져다준다 한들...


다음 7년 후, 꽃이 다시 필까 희망을 가져보다가도 가끔 두려워진다. 하지만 그땐 그때의 방식으로 대해 주리라 생각하고 있다. 알레르기 없이 환하게 행운을 기대하면서 맞이하게 될지 아님 눈물 콧물 쏟아내며 또다시 홀대하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어디선가 행운목 꽃향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하다.

사진설명: 현재 공기청정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우리 집 행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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