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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Oct 16. 2020

무늬만 무화과

무화과를 먹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전 일이 아니다. 가끔  식당에 가면 시금치나 어린잎 샐러드에 몇 조각의 무화과가 썰어져 fig라는 이름이 붙은 메뉴를 볼 수 있었다. 난 지금의 집에 몇 년 전 이사를 왔다. 무심코 작은방에서 내다본 창문에는 수많은 커다란 잎들을 가진 가지들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뻗어져 있었다. 가드닝에 별로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그다지 환영할 나무는 아니었다. 불만스럽게 창문에 걸터앉아 이래저래 올려다보니 생각보다 잎사귀가 풍성해서 창문 가리개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름이 깊어지고 있을 때, 작고 동그란 초록색 공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반짝이는 동그란 오나먼트가 달려있는 모습이었다. 서둘러 신발을 대충 신고 밖으로 나갔다. 고개를 들어 자세히 보니 그것은 무화과였다. 심드렁하게 쳐다봤던 나무가 무화과나무라니 내심 너무 기뻤다.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초록 잎사귀들 사이에 가려져서 여기저기 꽤 많은 무화과가 자라고 있었다. 오다가다 마당에 무슨 나무가 자라는지도 모르는 무심한 집주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식물을 잘 모른다. 봐도 잘 모른다. 시간은 흘러서 이 큰 나무에 꽤 주렁주렁 매달린 무화과는 우리 집의 자랑이 되고 있었다. 초록색 무화과가 하나둘씩 영글어갈 때는 행여나 빗줄기에 떨어질까 새들이 먹어버릴까 얼마나 조바심을 가졌는지 모른다. 한두 달을 지나니 어느새 탐스러운 붉으스름한 무화과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 많은 무화과로 무얼 할까? 일단 잘라서 먹고 샐러드에도 넣어먹고 무화과 잼도 만들어 먹을양 야심 찬 나의 계획들은 머릿속에 끊이질 않았다. 무화과를 조심스레 따기 시작했다. 꽤 많은 무화과들을 얻었다.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었다. 기쁜 맘으로 하나를 두 손에 살짝 들어 반을 따악 자르는 순간... 나는 허망함에 기운이 빠져 버렸다. 그렇게 몇 달을 기다리고 매일 올려다보던 무화과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설마 하고 하나 더 잘라보니 역시나 비어있었다. 따 놓은 모든 무화과는 먹을 수 없었다. 내가 공들이고 기다린 시간들이 허무해졌다. 우리 집 무화과나무는 카프리였다. 수컷 카프리는 식용 무화과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먹을 수 있는 무화과를 만들기 위해 수분시키는 역할을 하는 도우미였던 거였다. 신기하게도 다른 무화과랑 똑같이 생겼는데 말이다. 무늬만 무화과인 사실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무화과 종류

*커먼 타입 (Common Type) : 우리가 흔히 아는 무화과이다. 무화과말벌 없이도 열매를 맺으며, 봄에 전년도 가지에서 열리는 무화과인 Breba와 여름에 당해 가지에서 열리는 무화과인 Fig를 둘 다 생산하거나, Fig만을 생산한다.
*스미르나 타입 (Smyrna Type) : 무화과말벌과 꽃가루 제공 역할인 숫무화과 (카프리)가 있어야지 결실을 맺는 무화과이다. 숫무화과와 말벌이 없으면 열매가 자라다가 떨어져버린다. 커먼 타입의 무화과보다 대체적으로 열매의 질이 좋다.
*카프리 타입 (Capri Type) : 위에서 서술했던 수컷 무화과로, 무화과 말벌의 번식 수단이자, 스미르나 타입 무화과의 수정에 필요하다. 생김새는 일반 무화과와 같고 열매도 달리지만, 열매는 식용 가치가 없다



나는 무화과나무를 두고도 무화과를 사 먹는 슬픈 무화과나무 주인이다.


우리 무화과의 정체를 알기 전에 설렘과 기대감을 오가며 쓴 시가 있다. 부디 나의 간절함이 무화과에 닫길 바랬었는데...


하늘 찾아 뻗어진

가지 끝에 매달린 초록색 방울 하나

오매불망 새가 물어갈까

노심초사 기다리다

붉은 물감 드리워진 새 옷을 갈아입는다


푸른 잎사귀에 가리어져

수줍게 숨어있다

햇살 그득해지면

참았던 숨을 뱉어내며

길게 기지개한다



무화과 정보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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