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창호문양 있던 일곱번 째 집(1)

(스물 여섯 집에 관한 기록, 7)

by 고길동

월급날을 기다리는 도회적인 사택에서, 추수가 없으면 수입이 없는 산골동네로 이사왔다. 돈이 도는 월급쟁이 동네에서, 곡식과 열매를 기르고, 모으고, 쌓아두는 농부의 마을에 살게 된 것이다. 우리 동네는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어서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가게도 없었다. 차길에 내려서 한 참을 걸어가야 동네가 나왔다. 우리집은 동네어서도 가장 위쪽에 있었다.


가난한 동네였지만, 빈부는 나뉘었다. 잘사는 집은 뭐든 달랐다. 파란 양철대문을 지나면 콘크리트 마당에는 경운기가 주차되어 있었다. 마루 아래까지 콘크리트가 이어졌고, 파란 기와에 함석판 빗물받이까지 설치되어 비가 와도 들이치거나 질퍽거리지 않았다. 부엌도 콘크리트로 네모 반듯하게 깔끔했고, 동네 샘과 연결된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콸콸나왔다.


그런 집을 지나 오르면, 우리집이었다. 듣기로 우리집은 아버지가 아버지 외가 동네에서 구하신 빈집이었다. 아버지는 집도 그냥 얻었고, 멀리 산밭이지만, 집에 딸린 밭도 있다고 좋아하셨다. 그러나, 빈집이니만큼 모든 게 열악했다. 우리 집은 대문이 없었고, 온통 흙바닥이었다. 콘크리트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길다란 마당 오른쪽에 변소가 있었다. 지푸라기로 둘러 있는 항아리가 박혀 있는 변소였다. 문도, 지붕도 없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볼 일을 봤다. 동그란 항아리에 볼일 보기란 어린 나에겐 긴장되는 일이었다. 변소 옆에는 돼지집이 있었다. 어미돼지 두 마리를 키웠다. 새끼들은 마당에 뛰어 놀았다. 어느 날 마루에 앉아 있는데, 새끼돼지가 죽는 소리를 질러댔다. '꽥-, 꽥-!' 변소에서 나는 소리다. 새끼 돼지가 똥항아리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었다. 10살의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얘를 꺼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굳은 마음을 먹고 손을 내려 돼지 앞발을 잡았다. 새끼돼지는 당기자 통 - 하고 튀어 오르 듯 똥항아리를 빠져나왔다. 곧바로 파드득 털더니, 마당으로 도망갔다.


흙마당이었고, 배수로도 삽으로 파 놓은 작은 고랑이었다. 마루 아래까지 모두 흙이었으니, 비가 오면 모든 것이 진창이 되었다. 함석받이 같은 건 없었으니, 비가오면 마루에 비가 들이쳤다. 그건 뭐 닦으면 그만이었으니 아무렇지 않았다. 부엌도 흙바닥이었다. 수도나 우물은 없었다. 그래서 물은 샘이나 옆집에서 길러다 먹었다. 물이 귀하니 물을 여러 번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담도 없었다. 신후대라는 대나무가 담 역할을 했다. 바람이 불면 대바람 소리를 내며 휘청거렸다. 신호대를 베서 연도 만들고, 바람개비도 만들었다. 활도 만들고, 화살도 만들었다. 왕대를 베면 혼이 났지만, 천지가 신후대였으므로, 그걸 벤다고 뭐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난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우리보다 가난한 집도 많았다. 아랫집도, 뒷집도 초가집이었다. 그 뒷집은 차비가 아까워 10킬로씩 걸어다녔다. 다들 고무신 신고 다녔는데, 우리집은 운동화신고 학교다녔다. 아버지는 카오디오를 마루에 설치하고 트로트를 틀었다. 커피도 사 놓고, 손님오면 커피를 마셨다. 아버지는 땔감도 사서 준비했고, 마당 귀퉁이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 철쭉, 산당화, 개량 무궁화를 심었다. 논도 꽤 있어, 새벽에 나가 물꼬를 살핀 후, 자전거로 출근하셨다.


우리집은 스레트 기와집인데, 안방, 작은 방, 광, 부엌, 창고가 있었다. 부엌 뒤 작은 방은 거의 쓰지 않았고, 안방과 광만 썼다. 안방은 방문이 양쪽에 있었고, 티비와 냉장고가 있었다. 옷장은 광에 있었다. 마루에는 어머니가 결혼할 때 가져오셨다는 미싱이 있었다. 부엌은 흙바닥이었고 울퉁불퉁했다. 부엌문은 듬성듬성한 나무판자를 엮은 것이어서 밖이 내다보였고, 그 구멍으로 바람은 휭휭 들어왔다. 부뚜막에는 언제나 고양이가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아궁이에는 강아지가 불을 쬐고 있었다. 마루 옆에는 커다란 도사견을 키웠다. 가끔 줄이 끊어지면 옆집에 가서 닭은 물고 왔다. 돈을 물어주고 그날은 우리집 닭 먹는 날이 되었다. 닭털은 언제나 내가 뽑았다. 마당 구석엔 토끼도 네 마리 정도 키웠는데, 풀 뜯어다주는 일이 너무 귀찮았지만 내가 가면 반겨하는 토끼를 보면 좋았다.


산골동네엔 없는 게 많았다. 제일 먼저 가게가 없었다. 막걸리를 사든, 캔디를 사든 산을 넘어 앞동네까지 가야했다. 앞동네 가게라고 해도 사택에서 보던 가게는 아니었다. 그저 농가창고에 박스를 쌓아놓고 과자를 파는 정도였다. 막걸리도 냉장고가 아니라, 땅에 뭍어놓은 항아리에서 꺼내주었다.


마을 앞에는 커다란 평나무가 있었다. 500년은 넘었다고 했는데, 과연 그래 보였다. 어른들은 평나무 아래 누워 있었고, 여자아이들은 옆에서 공기놀이를 했다. 남자 아이들은 모두 평나무에 올라가 놀았다. 얼마나 크던지 가지가 갈라지는 곳에 네다섯명이 같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무서웠지만, 같이 놀려면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딱 기본까지만 올라가고 무서워서 더 이상은 못 갔다.


평나무 옆에는 커다란 샘이 있었는데, 동네 샘에서는 물도 길어먹고, 빨래도 하고, 돼지도 잡고, 개도 잡았다. 뭐든 다 했다.


어머니는 매일 물을 길러 물독을 채웠다. 한겨울 새벽 겨울바람이 들어오는 부엌에서 불을 지폈다. 가마솥에 물을 가득 넣고, 불을 지펴 온돌을 데웠다. 계절이 바뀌면 창호지를 새로 붙였다. 어디서 모아오셨는지 예쁜 나뭇잎을 사이에 끼워넣어 문양을 만들어 냈다.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할라치면 맥주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으셨다.


나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자랐다. 비오는 날 마루에 앉아 동생들과 함께 음악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불렀다.


art_16371344722593_7523a4.jpg
%EC%B0%BD%ED%98%B8%EC%A7%80.jpg?type=w966



https://blog.naver.com/pyowa/22271103239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무도 안 봐, 아무도. 그러니 신경 쓸 것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