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을 맞으며 수평선으로 걸었다.

by 고길동

모래사장이 코앞이었으나 물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발은 무릎까지 뻘에 박혀 있었고, 한 발을 내딛으려 힘을 주면 다른 발이 더 깊이 뻘로 파묻혔다. 겨우 한 발 내 딛는다 한들 뻘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내가 당황하건 말건 밀물은 밀물답게 차곡차곡 밀고 들어왔다. 무릎까지 찰랑거렸던 바닷물은 발이 무릎까지 빠지자 그만큼 높아졌고 어느새 배꼽까지 올라왔다.

덜컥 겁이났다. 23살의 막 제대한 청년이었지만, 죽음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한여름 조개잡이에서 순간, 삶과 죽음의 문제로 바뀌었다. 뻘에 발이 박혀 있으니 박차고 올라 헤엄을 칠 수도 없었다. 겁이 났지만 겁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잠시 생각했다. 순간 깨달았다. 뻘에 발이 박혀 있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먼저 뻘을 벗어나야 한다. 딱딱한 뻘로 가야한다. 내가 아는 딱딱한 뻘은 걸어들어왔던 뻘뿐이다. 그리로 가야 한다.​


몸을 수평선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나아갔다. 수평선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밀려들어는 파도가 내 몸통을 툭툭 건드리며 잔 물방울을 튀겼다. 바닷물은 탁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갯벌의 질감은 점점 딱딱해졌다. 들어온 길이 맞다. 곧 질펀한 갯벌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발은 자유로워졌고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그렇게 수평선으로 걸었다. 바다는 금새 깊어졌다. 이제 파도는 내 목에서 찰싹거렸고, 바닷물은 내 입술까지 튀겼다.​


들어올땐 갯벌속 깨진 조개껍질을 밟을까봐 조심히 걸었지만, 생사의 그순간 발바닥 상처는 하찮티 하찮은 것이었다. 딱딱한 갯벌을 더듬어 빙돌았다. 모래사장이 가까워졌다. 밀물은 내 걸음보다 훨씬 천천히 들어왔다. 내가 걸을수록 바닷물 위로 몸이 조금씩 올라왔다.​


물밖으로 나왔다. 철퍼덕 주저 앉으니 모래사장이 따끈했다. 안도가 밀려왔다. 살았구나. 발바닥 여기저기서 피가 나고 있었다. 곁에는 그 와중에도 버리지 않은 조개바구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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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뉴스는 소식을 전하며 밀물이 생각보다 빠르다는 분석을 내놨다. 하나마나한 말이다. 전형적인 탁상분석이다. 그것때문에 갯벌사망사고가 있는 게 아니다. ​


밀물은 모래사장과 평행으로 밀고 오는 게 아니다. 갯벌에도 높낮이가 있어 바닷물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밀물은 낮은 곳으로 먼저 돌아들어온다. 그리고 들어오는 갯벌은 푹푹빠지는 진창 갯벌이 되는데 발이 빠지면 움직이기 어렵다. 발이 빠지만큼 상대적으로 몸은 바닷물에 더 깊게 잠긴다. 이 모든게 얕은 밀물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으로 향해 들어온 길을 찾아 돌아나온다는 건 더 겁나는 일이다. 그래서 바닷사람이어도, 헤엄을 잘쳐도, 초행길이라면 자칫 갯벌에 발이 박힌 채 사고를 당한다.

갯벌 사망사고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들어온 길로 나오는 것이다. 주민을 따라나와도 되겠다. 물때에 맞추어 새로운 길로 나오는 것이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나도 그때 조금만 더 당황했다면, 조금만 잘못판단했다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이번에 사고 당하신 분께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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