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으로 현혹하고, '방법'으로 장악한다.

노예의 길 제3장

by 고길동

역사의 발전하는 것인가, 단지 변화하는 것인가.


근대역사는 특권폐지의 역사였다. 폐지된 특권의 자리에는 물이 스며들 듯 새로운 특권이 조금씩 들어차고 있다. 특권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특권의 출현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그것이 권력투쟁일 테니까.


정치, 경제, 종교할 것 없이 '목적'은 매력적이다. 대중을 현혹하기에 충분하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의 '목적'자체를 거부하는 자유주의자나 자본주의자는 없을 것이다. 다만, 사회주의의 '방법'에 동의하지 못할 뿐이다.


사회주의는 계획하고 구성원에게 계획을 집행한다. 구성원의 진정한 복지와 자유를 위해, 현명한 당국이 결정한다. 구성원이 거부하면, 그들보다 더 지혜로운 당국이 자신의 결정을 구성원에게 교화하고 가르친다. 주거, 직업, 교육, 복지와 같은 계획으로 구성원이 조금씩 당국에 기대게 만든다. 어느 순간 당국의 은혜가 없으면 독자적 생활이 불가능하도록 환경을 구축한다. 대중은 완전히 장악된다.


사회주의 목적과 자유주의 방법의 현명한 배합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현명한 배합 같은 건 없다. 장점을 섞으려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단점만 섞인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될 것이다.


나는 사회주의, 집단주의, 교조주의가 싫다. 목적과 추구하는 공익에 공감하지 않는게 아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가르치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규범의 최소한을 지키며 나의 판단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누구의 가르침 따윈 필요없기 때문이다. 가르치려 든다면 사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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