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를 계획하는 사람은 없다.

노예의 길 제5장

by 고길동

하이에크 노예의 길 제5장 <계획과 민주주의>


독재는 공익과 국민의 이름으로 시작된다. 언제나 그랬다. 미사여구가 아니다. 그들은 진심이었다.


다수결이라는 민주의 이름으로 권력을 잡았다. 공익을 계획하다, 공익에 취해 독재로 빠진다. 취했으므로 독재인 줄 모른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의 선의에 복속하지 않는 반란군이 있을 뿐이다.


다수결은 치명적 약점이 있다.


대안이 너무 많으면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다. 대안이 많으면 권력자는 취향에 맞추어 대안을 줄여나간다. 줄여진 대안을 자신의 정책에 이점을 강조하고 위험을 축소하여 꾸민다. 최종 목표에 대한 다수의 동의는 얻기 어려우므로 다수가 동의를 얻기 쉬운 전단계에 대한 투표를 유도하여 최종 다수결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다. 다수결은 투표를 진행하는 그룹에 극히 유리한 게임이다.


선택가능한 대안이 없는 경우에도 다수결은 무의미하다. 권력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엮어내고, 다수가 추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투표 진행자의 만지작거림으로 추인은 그리 어렵지 않다.


권력자 '자의적 다수'를 탄생시킨다.


민주주의가 다수결을 의미한다면,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같다.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위한 수단이다. 우리가 목적은 자유가 아니던가. 자유주의는 최소한의 것만 다수의 판단을 따른다. 나머지는 모두 자유다. 다수가 무엇을 결정하던 자유인은 자유인의 방식대로 살 자유가 있다. 다수의 가르침을 거부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독재를 계획하는 사람은 없다. 공익을 계획하고, 계획에 따르지 않는 소수를 가르치고, 거부하는 소수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체주의고 독재다. 공익과 계획이 독재로 흐르기 쉬운 이유다.


하이에크의 통찰은 너무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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