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길 제4장)
전문가는 현인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이다. 전문가이므로 자신의 주장과 논리의 우월성을 확신한다. 실제로 개개의 전문가집단의 논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실현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전문가집단의 주장은 서로 충돌되거나 우선순위에 다툼이 있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논리와 물질의 치열한 경쟁에서 어떤 전문적인 주장도 완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는 자신의 주장을 구현하는 것이 지성인으로서 책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서 자신의 공익을 현실에서 실현하려 한다. 상대방이 충분한 이해력이 있다면 전적으로 수긍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느 순간, 전문가는 자유와 경쟁으로는 자신의 주장을 달성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권력을 획득하여 계획을 통해 우월적 사상과 물질을 사회에서 구현해내려 한다. 계획을 위한 권력투쟁에 나서게 된다. 이상에 대한 확신이 동력이므로 강한 희생정신과 단결력을 보여준다.
전문가의 주장에는 중요한 오류가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래를 알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하물며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바람직함'을 계획해 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불타는 정의감과 진정성을 의심할 생각은 없다. 그들이 여론이나 투표를 통해 자신의 주장에 '국민의 이름으로', '시민을 대표하여'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도 있겠다. 그랬다한들 그들에게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예지력이 생겼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자유의 연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확정에서 온다. 왜 불확정인가. 각자의 자유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사건이, 사회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유다. 결국, 자유로운 사회란 누구도 완전한 자유를 가질 수 없는 사회여야 한다. 모든 권력, 이론, 주장, 이상에는 주장자가 이해할 수 없는,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한계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그것이 비로서 합리적 조정이 있었다는 방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계획대로 사회가 돌아가고 있다면, 무언가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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