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의 현재가=(권리-의무)×생존

(법률에세이 1편)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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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를 들어가기 전 법대생들은 법조문을 달달 외고 다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왠 걸. 시험장에 법전은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심지어 법전에 관련판례까지 몇 개씩 써 있었다.


1학년 민법 중간고사를 보려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91년 쯤 법대 시험은 조교가 칠판에 짧게 문제를 쓰면 학생들은 논술식으로 쓰는 방식이었다. 그날도 조교가 교탁에 서더니 봉투에서 시험문제를 꺼냈다. 숨막히 듯 조용하니, 칠판에 또각또각 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민법 제3조에 대해 논하라'


이건 뭔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다. '민법 제3조'라니, 어쨌거나 법전에 써 있을 거였다. 법전 넘기는 소리가 여기저기 난다.


사람은 생존하는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민법 제3조)


한 두 문제 찍고 들어가는 날날이 법대생이었으니, 외운 걸 응용하는 게 가당키나 했겠는가. 내가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멍하니 있으니 조교가 불쌍해 보였던지, 조용히 '그냥 외우고 온 거 써'라고 말해주었다. 백지를 낼 수도 없고, 외우고 온 것도 아깝고 해서 난 찍고 들어온 문제를 그냥 썼다.


이 문제의 쟁점은 언뜻 아래와 같은 것이다.


<사람은 무엇인가>

- 언제부터 사람인가. 언제부터 죽은 것인가.

- 법인은 사람인가.

- 태아는 사람인가. 태아가 태어나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 실종선고된 사람은 사람인가. 그는 어떤 권리가 있는가. 공법상 권리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 이로 인해 발생하는 선의의 제3자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권리는 무엇인가>

- 권리를 가질 수 있으려면 인간으로서 자격이 필요한가.

- 권리와 별개로 행위를 하기위한 자격이 필요한가.

- 이로 인해 발생하는 선의의 제3자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이제 더이상 대학생도 아니어서, 이런 쟁점을 세세히 외울 필요도 없도, 헷갈리면 찾아보면 된다.


다시 민법 제3조를 보니 '생존하는 동안'이라는 문구에 눈이 간다.


나의 모든 권리와 모든 의무는 내가 '생존하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권리에서 의무를 빼면 잔존 권리가가 계산되고, 그 총량에 생존의 기간을 곱하면 '권리의 현재가'가 계산되지 않을까.


(권리-의무) × 생존 = 권리의 현재가


민법 제3조는 인간은 그렇게 가냘픈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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