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에세이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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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을 공부하다보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너무나 중요하다는 듯이 나온다. 그것도 중세 이후가 되어서야 나온다.
교수님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고, 민법책에도 자세히 써 있지 않다. 내 주변엔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가 없었으니, 물어보면 '공부도 안 하면서 쓸데 없는 것만 궁금해한다'고구박이나 받았다.
나중에 법제사를 공부하면서, 비로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가 왜 중요한 변화인지 알게 되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법리는 중세가 되어서야 등장한 개념이다. 로마시대에는 약속을 하여도 '구속력'이 생기려면 공권력의 승인이 필요했다. 공권력이 약속을 승인하는 절차를 밟았는데, 법무관이 요건을 검토한 후 구속력을 부여했다. 법무관들은 자신의 업무방향을 문서로 공고했고, 후임 법무관은 여기에 수정 가감하여 다시 문서로 공고했다. 이것이 서양 성문법 탄생의 시초다.
로마의 사람들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왜 위험한 논리라고 생각했을까.
약속을 하는 당사자가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으면 탈취적인 약속이 횡행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적으로 대등하지도 않고, 정보에 있어서도 대등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대등하지도 않고, 신분적으로도 대등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약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집행된다면 그것은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인 것이다.
중세의 교회법에 기댄 권력자들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간단한 논리로 세상을 장악했다. 공권력을 배제하는 논리로, 사적자치를 주장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빼앗고, 고발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폭정이 다른 게 아니다. 지키지 못할 법을 만들고 지키지 못하였다고 처벌하는 것이 폭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약속'도 마찬가지 아닐까. 불공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계약을 한 후, 계약위반이라고 강제집행을 하는 것이 착취이고, 탈취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사적자치에 공권력의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로마의 고민과 중세의 고민 모두 지금까지도 유효한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