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길 제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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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 나치즘의 사회주의적 뿌리
살아간다는 건 먹고 사는 것이다. 어느 국가체계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권력이다. 그런면에서 자유주의건, 전체주의건 권력은 같다. 부에 권력이 따라붙는 국가인지, 권력에 부가 따라오는 것인지가 다를 뿐이다.
영국식 자유주의는 부에 권력이 따라붙는 국가체계다. 부의 중심에 개인이 있으며, 부의 많고 적음으로 권력자를 가른다.
독일식 자유주의의 '부'는 그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 권력이 '부'를 배분할 뿐이다. 급진주의는 새로운 가치에, 보수주의는 기존의 가치를 기준으로 부를 배분한다. 독일식 급진주의와 보수주의는 국가의 권력분배에 방향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질 뿐, 국가가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양 진영 모두 국가의 공익판단 없는 부의 분배는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본다. 경쟁이 반드시 공정하지는 않으며, 거기서 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노예적 삶을 국가가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런 영국식 자유주의는 미개하면서도 야만적이라고 선언한다. 독일식 급진주의와 보수주의는 그 점에서 입장이 같다. 그들은 같은 편에서 영국식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독일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급진주의와 보수주의는 자연스레 국가주의, 관료주의에 흐르게 된다. 이런 흐름에서 슈미트의 결단주의, 옐리네크의 국가주권론이 나타났다. 이렇게 나치즘의 뿌리가 하나하나 쌓이고 있었다.
양차대전 모두 독일은 패했다. 영국식 자유주의가 승리했다. '부의 시스템'이 '권력의 시스템'을 이긴 것이다.
'권력의 시스템'이 걱정했던 것들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부에 정치가 종속되어갈텐데, 이를 어찌할 것인가.
'부의 시스템'이 예정하지 못한 것 어떻게 될 것인가. 국가법인론을 극복하려 나타난 영국식 자유주의건만, 자본의 축적으로 개인은 상사법인에 의해 지배받고 있지 않은가. 상사법인을 넘어 글로벌 회사에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의 주권을 빼앗기고 있는 건 아닌가.
이번 장은 나치즘의 뿌리를 설명해서인지, 철학적이다.